
여행자들에게, 혹시 여행길에 아이와 어른 할 것 없이 온 주민들이 갑옷을 두르고 다니는 곳에 도착한다면 제 말을 기억하세요. 첫째로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둘째로 상대의 이름을 말해주고, 마지막으로 상대의 갑옷에 붙은 티끌을 털어내세요. 그것만 하더라도 당신은 그 마을에서 지켜야 할 예절은 다 지킨 셈입니다. 저도 방금 알게 된 사실이지만요. 잔잔하게 미소짓고 있는 이 자가 알려주었습니다.
노에-라의 갑옷은 무척이나 아름답습니다. 달을 깎아 가루를 뿌려놓은 것 마냥 은빛이 어릿어릿 떠올라 있고, 열을 맞춰 정리된 조각들이 온몸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네요. 천으로 잘 닦아두었는지 하얀 갑옷이 깨끗하기만 한데, 어울리지 않는 검은 자국이 남아있습니다. 이름 교환을 마치고 그가 말해 준 ‘갑옷 털기’의 예절을 지키느라 열심이었던 저는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군데군데 이빨 빠진 것처럼 남아있는 검은 흔적을 털어주려 손을 댔지만 그것은 티끌이 아니라 없는 자국이었을 뿐이었어요. 노에-라는 외부인이라 알아보지 못했을 거라고 괜찮다 말했지만 아무래도 미안한 일을 하고 말았습니다. 꼭 스물 두 개의 빠진 자국. 그렇다면 스물두 살이라는 걸까요.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이는 모습에 또다시 질문이 턱 아래까지 차올랐지만 이미 실수를 한 번 해버린 바람에 따로 물어볼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다만 조용히 나아가는 그의 뒤를 따라 마을로 향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조용한 마을이 또 있을 수 있을까요. 곳곳의 주민들이 마주칠 때마다 상대의 이름을 피워냅니다. 그렇게 이름의 모양을 확인하고 난 뒤에도 다시 만나면 또 다시, 그리고 또 다시 확인을 하더랍니다. 그러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리게 될 거라서 매번 이름을 주고받는 거라고 설명은 들었지만, 저로서는 이해를 하기 힘든 일이네요. 그런 게 그렇게 쉬이 잊히는 거던가요. 그렇지만 우리 마을의 높은 소음과는 달리 주위에 온통 퍼져있는 이름 물방울들의 향연이 꽤 아름다웠기에 의문은 잠시 미뤄두기로 했습니다. 서로 풍습이 다를 수도 있는 일이겠지요. 사실은 어린 아이들 또한 갑옷을 두르고 다닌다는 것도, 집이 세 개 간격으로 나뉘어 벽이 세워져 있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런 게 바로 여행의 묘미라고 할 수 있겠죠.
예의를 차린다고 물어보지 못했던 겉모습에 비해 많아 보이는 스물 두 개의 검은 자국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것은 노에-라였습니다.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고마운 일이지요. 그것이 꽤나 놀랍고도 흥미로운 이야기였기에 좀 더 자세히 적어보았습니다.
“이야기에 앞서, 먼저 이곳 사람들이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서 말씀드려야겠네요. 라코덴의 아이들이라면 말을 배우기도 전에 갑옷을 손질하는 법부터 배웁니다. 이건 다른 곳에서 이를 닦아내거나, 세수를 하는 정도의 일상적 절차라고 할 수 있지요. 아마 지나오면서 사람들이 모두 갑옷을 두르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겁니다. 우리는 모두 갑옷과 함께 태어나, 갑옷과 함께 살아가다가 그걸 모두 잃어버릴 때쯤 조용히 사라져 죽어가지요. 그래서 우리는 나이 대신 빠진 조각의 수를 세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모두가 조각이 빠진 자국이 있었네요. 어린이들은 적은 수의 조각이 빠져 있고, 어른일수록 많은 조각이 사라져 있습니다.
“저는 햇수로는 세상에 나온 지 십오 년이지만, 스물 두 개의 조각이 빠져 있어요. 제가 지금보다 좀 더 어린 때에 어떤 일이 있었거든요. 혹시 붉은 숲 너머로 가보신 적 있으신가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듯 말 듯, 아직은 아리송합니다.
* * *
지금으로부터 사 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물론 지금도 어리지만, 그것보다도 더 어렸던 저는 무서울 게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디에든 질문을 던졌지요. 조상 대대로 지켜 왔던 이름 교환이나 갑옷 털기. 푸른 숲 너머 초록 숲, 초록 숲 너머 붉은 숲. 그렇다면 그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지. 위에서 떨어지는 커다란 집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빛을 빚는 자들은 어떻게 너머로 갈 수 있는 것인지. 나는 왜 그럴 수 없는지.
이 마을의 다른 아이들처럼 저도 갑옷을 손질하는 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결이 가지런하도록 하나씩 조각들의 열을 맞추고, 푸르게 눌어붙은 자국과 붉게 올라온 흔적을 긁어내고 닦아낼 줄 알았지요. 거기에 질 좋은 기름을 발라 천으로 한참을 문지르면 반짝반짝 윤이 난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빠져있는 부분은 어디인지, 들려서 어긋난 부분은 없는지, 몇 번이나 들여다보며 관리해야 했지요. 보통 귀찮고 힘든 일이 아니었어요. 물론 다 해두고 나면 보기에 좋았지만, 항상 그러자니 그게 너무 싫어서요. 말 그대로 태어날 때부터 몸에 두르고 있던 것들이니까요. 아이가 아직 알에 머물러 있을 때, 세상은 단단한 껍데기를 한 겹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지요. 그래서 태어나지 않았다고 하기에도 태어났다고 하기에도 불확실한 모습으로 구십 일을 보내고 나면 스스로 안에서부터 깨트리고 나오는 겁니다. 깨지고 남은 껍데기, 그 조각들을 모아다 갑옷을 지어 입습니다. 한 몸과도 같은 물건이지요.
구십 일 동안이나 세상과 벽을 친 채 살아가다가 다시금 껍데기를 지어 그 안에 웅크리는 게 싫었어요. 평생을 자신만의 작은 성이 녹슬지 않도록 세심하게 관리하고, 손질하고.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지요. 갑옷보다는 감옥에 가깝게 느껴졌고, 감옥 속에서 사람들이 익숙해져 있는 게 말이에요. 어째서 아무도 알지 못하는 걸까, 정말로 갑옷을 벗으면 안 되는 걸까.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기에 저는 스스로 답을 구하기로 했습니다.
붉은 숲 너머로 향하기로 한 것은 순전히 어른들이 절대로 가지 말라고 일러두었던 곳이기 때문이에요. 아무도 가지 못하게 막는 곳에 아무도 알지 못하는 진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열한 번째 비늘이 빠지던 날, 생각하던 일을 행동에 옮겼어요. 푸른 숲 속 마을, 세 번째 붉은 벽 맨 오른쪽에 자리 잡은 집에서 조용히 빠져나왔습니다. 위로 쭉 뻗어 하늘하늘 흔들리는 푸른 숲이 덮은 곳까지가 마을, 그 너머로 바로 초록색 숲이 보입니다. 가면 갈수록 사방이 밝아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이윽고 동네 아이들과 몰래 와 보았던 바위 공터가 나왔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초록색 숲이 잠깐 이어지다가 모르는 새에 붉은 숲으로 가게 된다고 했지요. 기대 반, 설렘 반, 아주 얕게 깔린 두려움을 안고 더욱 멀리 향했습니다.
가고 또 나아가며 나무의 색을 살피다가 그제야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마을 어른들이 쫓아온 걸까 싶어서 금방 숨어버렸었지요. 자그마한 돌 뒤에서 숨을 죽이고 기척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들키면 혼날 걱정에 꼭꼭 숨어버렸지요. 괜한 걱정이었지만요. 모퉁이 돌아서 나타난 것은 빛을 빚는 자들이었어요. 가끔 내려온 자들이 있어서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나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은 처음 보았었지요. 게다가 마을에서 보았을 때보다 등에 이고 있는 빛 단지가 훨씬 커다랬어요. 휘둥그레 바라보고 있던 저를 알아차린 한 사람이 저를 가까이 불렀지요.
“아이야, 이곳에는 어쩐 일이냐. 너는 저 아래 라코덴 마을 사람이지 않니? 마을에서 너를 보았던 기억이 나는구나.”
“저 너머로 가려고 여기까지 왔어요.”
“푸른 숲 사람이 붉은 숲에 간다고?”
“아뇨, 붉은 숲보다 더 멀리 갈 거예요.”
의아한 얼굴로 저를 바라보던 빛을 빚는 자는 이내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습니다. 그 사람들을 만난 게 다행이었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너머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었거든요. 그 자들은 커다란 빛 덩이가 떨어진 다음에야 빛 단지에 빛을 담으러 갈 수 있다며 기다리고 있다고 했지요. 커다란 빛 덩이에서 떨어져 나온 빛을 담아야 한다나요. 같이 가면 더 좋을 것 같았지만, 그러기엔 너무 늦을 것 같아서. 저는 그냥 혼자 붉은 숲으로 향했어요.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밝아지고, 또 시끄러워졌어요. 집도 훨씬 더 많이 떨어져 있었고요. 거의 대부분 빈 집으로 보였지만요. 날카로운 손을 가진 자들이 자꾸만 악수를 하려고 들어서 피하느라 진땀을 뺐어요. 갈 길이 멀어서 급히 가겠다며 반 도망을 쳤었지요. 어른들이 말했던 날카로운 것들이 저걸 말하는 거였을까,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숲은 갑작스럽게 끝이 났어요. 그리고 모래밭이 펼쳐져 있었지요. 머리 위에서 하루의 반 정도 켜 있고 하루의 반 정도 꺼져 있던 커다란 빛은 빛깔이 달라져 있었지요. 그게 하얀색일 줄은 처음 알았어요. 그리고도 또 다시 위로, 위로.
세상이 끝나 있었습니다.
입을 크게 벌려 숨을 들이쉬어도 속이 바짝바짝 말라가는 곳이었어요. 겨우 남은 숨을 내뱉어도 이름이 빚어지지 않았지요. 세상은 하얬고 말라 있었고 시끄러웠고 너무나 달랐어요. 또, 날카로운 것들. 날카로운 것들이 뒤엎고 찢고 내달리고 쪼고 두들기고 때리고 끝도 없이 저를 쫓아오고. 하얗고 커다란 빛을 가리는 그보다 커다란 까맣고 물컹한 기둥들이 저를 쉴 새 없이 쫓아다녔습니다. 다섯 개로 갈라진 거대한 기둥들이 쿵쿵쿵 바닥을 울리고, 목이 터져라 마른 외침을 뱉고.
여행을 떠난다 해도 저 너머로 가지 마세요. 속을 찢는 공허함과 죽어도 닿지 않을 세상이 그 곳에 있습니다. 날카로운 것들과 거대한 기둥들이 당신을 쫓아올 거예요. 커다란 빛은 푸른 빛일 때가 가장 안전합니다. 저는 아마도 너무나 멀리 갔던 모양이에요. 조심하세요. 그것들은 생각보다 빠르답니다. 일곱 개의 조각은 그 때에 잃어버리고 말았어요. 당신은 잃을 조각도 없으니 더욱 위험할 거예요.
저는, 그러게요. 어떻게 살아있는지 실감도 나지 않아요. 아마 저는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뒤로 물러났을 겁니다. 선조들이 그랬듯 선조들의 선조들이 그랬듯 도망치고 숨어서 익숙한 시원한 골목으로 돌아왔을 거예요. 잃어버린 일곱 개의 조각에 눈물짓고 그나마 남은 너덜거리는 갑옷을 손질했을 거예요. 그러고 나서야 잠이 들었겠지요. 세상 무서운 줄 몰랐던, 열한 개가 빠졌던, 열여덟 개가 빠지게 된 어린 물고기는 연못 바닥에 누워 꿈도 꿀 줄 모르는 채 잠들었겠지요.
* * *
이제는 스물 두 개의 비늘이 빠져있는 물고기는 그렇게 이야기를 맺었습니다. 저 너머로 정말 가지 않을 거냐고요? 그럴 리가요. 이런 이야기까지 들었는데 가지 않을 리가 있나요. 다만 행운을 있는 대로 끌어안고 가 봐야지요. 모험가는 어쩔 수 없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