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화분의 사인은 갈증이었다.
본래 뿌리내려야 했던 숲에서 떨어져 나와 한 줌의 조각난 땅에 자리 잡기에는 무리였을지 모른다. 나는 촉촉하게 젖어있는 화분의 흙을 바라보았다. 흙에서는 푸르른 수해의 냄새가 났다. 물론 전부 환상이었지만.
2.
나는 관 같은 화분을 들고 죽어버린 씨앗의 고향으로 향했다. 새까만 비닐봉지에 볼품없이 담긴 화분과 들쳐 맨 가방이 다였다. 가방 속에는 모종 삽 하나가 있었다. 전철을 타고 한참을 걸어 도착한 숲에는 숲이 없었다. 빽빽이 자라나있던 나무들은 허물어지고 우뚝 선 건물들이 날선 모습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땅은 흙 한줌 되돌아갈 곳 없이 딱딱한 아스팔트 껍질로 쌓여있었다.
내 곁에는 네가 없는데, 우리의 추억이 서렸던 곳도 없어졌다. 나는 이제 네가 보고 싶으면 어디로 가야 해? 나는 화분이 든 봉지를 끌어안으며 물었다. 바스락── 비닐봉지만 뜻 없는 소리를 중얼거렸다.
3.
나는 우리가 함께 했던 낙원을 기억하고 있다. 너는 길을 잃었어, 울고 있는 내 앞에 나타나 양 손을 붙잡아 주었다. 풀잎의 이슬이 유리보다 말간 빛으로 영글고 작은 꽃들이 발바닥을 간질였다. 잎이 넓은 나무 위에서 햇빛이 길게 누워있었다. 별과 별 사이의 무수한 떨림이 바람이 되어 우리의 몸을 휘감았다. 공기에는 달짝지근한 향이 흘렀다. 우리는 그 곳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했다.
하늘이 오색 찬연한 색으로 저무는 날이었다. 네 얼굴은 노을에 붉게 물들어 있었다. 우리는 숲의 끝자락에 섰다. 너는 투명한 눈으로 나를 보며 이제는 가야한다고 말했다. 고개 젓는 내 등을 네 손이 떠밀었다.
나는 포기하지 못하고 눈앞에 날리는 솜털 날개를 단 이름 모를 씨앗을 움켜쥐었다. 뒤를 돌아 본 숲은 어쩐지 울창한 나무들이 낯선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무기둥 사이로 성성이 불어오는 바람은 절대 우리가 있던 곳에서 흘러오는 게 아니었다. 하마터면 전부 환상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지만.
움킨 손아귀에는 그곳의 체취가 남은 씨앗 하나가 남아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훔쳐온 씨앗을 화분에 심었다. 그곳에 싹이 트면 어쩐지 너를 다시 만날 수만 있을 거 같아서. 나는 씨앗을 지켜보았다. 수많은 그리움들이 눈에서 쏟아져 화분으로 흘러들었다.
4.
그러나 싹은 트지 않는다.
청동으로 된 날개를 가진 나비가 내 속 안에서 날아다녔다. 면도칼보다 얄팍한 날개들이 나풀나풀 가슴을 얇게 얇게 베었다. 가슴의 갈라진 틈사이로 그리움이 흘렀다. 무수한 나비의 푸르른 날개 짓에 나는 천둥처럼 울었다. 눈썹에 모인 한 쌍의 길쭉한 먹구름 아래로 무수히 많은 비가 내렸다. 눈물방울은 화분에 송알송알 떨어졌다. 지금까지 떨어뜨린 눈물을 모두 모아서 화분은 눈물에 잠긴다. 눈물은 물임에도 목을 축여주지 않는다.
씨앗은 눈물에 잠겨 갈증으로 죽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