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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러 가자.

 

아무런 맥락 없이 대뜸 보낸 말을 너는 무시하지 않았다.

 

어디로?

다음 주부터 벚꽃축제 시작하잖아. 벚꽃놀이 가자.

시험기간이잖아.

뭐 어때.

과제도 많고.

다 했는데.

난 한참 남았어. 조별과제도 있고.

도와줄게.

너 나랑 같은 수업 안 듣잖아. 같은 과도 아니고. 뭘 어떻게 도와주려고?

PPT 디자인?

 

액정 너머로 네가 헛웃음짓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가자, 그래.

 

너에게서 온 짧은 답장은 괜스레 나를 들뜨게 했다.

 

주말엔 사람이 너무 많아. 복잡한 곳을 싫어하는 너의 의견이었다. 그럼 평일에 가자. 나는 네가 그럼에도 그런 곳에서 나와 시간을 보내주겠다는 것이 기뻐 무조건 고개를 끄덕였다. 바보야, 가기 싫다는 뜻이잖아. 네 말에 어린 농조는 알아차리지 못하기도 힘들 만큼 짙었다. 우리는 시간표를 맞추어 보았다. 화요일 세 시부터는 너도, 나도 시간을 낼 수 있었다. 화요일 세 시에 학교 정문에서 만나. 너를 바라보며 몇 번이고 다시 말했다. 화요일 세 시, 잊지 마.

화요일의 약속은 금요일부터 나를 두근거리게 했다. 토요일에는 교통편을 알아보았다. 일요일에는 그날 입을 옷을 골랐다. 월요일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화요일에는 한껏 멋을 내고 집을 나섰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정문으로 달려갔다. 십 분쯤 기다리자 네가 모습을 보였다. 많이 기다렸어? 아니, 방금 왔는걸. 좀 더 늦게 올 걸 그랬다. 우리는 싱거운 농담을 주고받았다. 버스는 금방 도착했다. 붐빌 시간이 아니라 그런지 자리는 널널했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이 창가에 앉은 네 머리카락을 흩어놓았다. 너는 연신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다 창문을 닫아 버렸다. 덥지 않아? 내 물음에 너는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되물었다. 더울 날씨는 아닌데. 벌써 더워?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네가 말을 이었다. 정말로 더워 보이네. 너 원래 이렇게 더위를 많이 탔던가? 대답해야겠다고 생각한 찰나 버스의 안내방송이 들렸다. 우리는 이번 정류장에서 내려야 했다. 우리 여기서 내려야 해.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릴 수 있었다. 나는 끝까지 네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일부러 평일 낮을 골랐건만, 축제를 찾은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양옆을 장막처럼 두른 벚나무 아래로 온갖 노점상과 놀러 나온 사람들이 뒤섞여 있었다. 대부분 대학생쯤으로 보였고, 이따금 나이 지긋한 노인들 몇이 보였다. 나는 네 손을 잡아끌고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 지나치게 비싼 값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닭꼬치 두 개를 사 나누어 먹었고, 솜사탕과 아이스크림 사이에서 고민하다 솜사탕을 샀다. 다 먹은 솜사탕 막대를 핥던 네가 덥다고 중얼거리며 아이스크림을 샀다. 거봐, 덥댔잖아. 너는 아까의 일은 그새 잊었는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보였다. 노점상이 봄날에 어울리는 벚꽃음료라고 주장하던 음료수는 평범한 딸기주스 맛이 났다. 너를 졸라 인형을 잔뜩 늘어놓은 사격장 앞에 섰다. 귀찮은 기색을 보이던 너는 손에 총을 쥐자 진지한 눈빛으로 과녁을 노려보았다. 우리 둘 다 성적은 썩 좋지 못했다. 나는 아무것도 따지 못했고, 너는 총알이 다 떨어지기 직전 작은 인형 하나만을 따냈다. 상품으로 받은 인형은 내가 가졌다. 네가 내게 건넨 그 인형을 나는 혹여 잃어버리기라도 할까, 품 안에 꼭 끌어안았다. 너는 나를 보며 잠들지 못하는 어린아이 같다며 웃었다. 그저 웃어넘긴 그 말은 사실이 되어, 나는 잠이 오지 않는 밤마다 네게 받은 인형을 끌어안고 칭얼대는 어린아이가 되었다. 털이 복슬복슬한 그 인형은 너를 꼭 닮았다.

바람이 많은 날이었다. 부드러운 바람이 한 번 지나갈 때마다 사방에서 벚꽃잎이 흩날렸다. 벚나무 아래에 서자 꽃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빠르지 않은 걸음걸이로 거리를 걷는 네 발에도, 바람이 간질이는 네 뒷목에도, 너를 향해 내밀지 못하고 거두어들인 내 팔에도 벚꽃잎이 묻어났다. 벚나무는 가벼운 어루만짐에도 꽃잎을 우수수 쏟아내었다. 옅은 분홍빛의 꽃잎 조각은 네 주위를 맴돌다 어느 순간 네 머리카락에, 어깨에, 손목에 내려앉았다. 바람이 많이 부네. 무심히 꽃잎을 털어내는 네 목소리에도 벚꽃 향이 배어 있었다. 포르르 떨어지는 꽃잎을 선선해진 바람이 밀어올렸다. 손을 뻗어 작은 꽃잎 한 장을 받아내었다. 가벼이 얹힌 꽃잎은 이내 팔랑대며 날아가 버렸다. 너는 벚꽃을 닮았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벚꽃을 닮은 너는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나오니 좋네. 나는 일부러 더 크게 웃으며 네 말을 받았다. 나오길 잘했지? 내 덕분인 줄 알아. 너는 긍정도 부정도 않으며 픽 웃음을 흘렸다. 아직 조금 남은 음료수는 색깔만은 벚꽃을 그대로 녹여 놓은 듯했다. 길은 온통 분홍빛 꽃잎으로 뒤덮여 있었다. 너와 나란히 걷는 그 길은 그저 그대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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