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를 사랑했어?"
밤이었다. 슬픔마저도 바람이 되어 쓸려나가는 그런 밤이었다. 물기어린 목소리가 내게 속삭이듯 물었다. 질문이 머금은 슬픔이 무겁고도 축축해 발가락 사이로 밀려들어오는 파도와도 같다고 생각했다. 너는 내 대답을 기다리며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땀이 배어든 흰 손이 내 손을 찾아 헤매며 바닥을 더듬었다. 열이 올라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과는 달리 네 손은 차가웠다. 마치 죽음이 방금 전까지 네 손을 잡고 있었던 것처럼. 앨리스, 대답해줘, 나를 사랑했어? 탁하게 흐려진 눈에 맑게 고인 눈물이 흘러내려 머리카락을 적신다. 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말 안할래. 대답하기 싫어. 대답하면 네가 죽을 것 같아. 아무 미련 남기지 않고 날 떠날 것 같아. 가지 마, 도로시. 죽지 마. 살아줘."
맞잡은 손 위로 눈물 한 방울이 굴러 떨어졌다. 여느 때와 같은 네 미소가 희미하다. 발간 얼굴에 두드러지는 화상자국이 선명하다. 네가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표정을 지어보였기에, 더욱더 힘주어 네 손을 잡았다. 아파, 탁한 목소리가 키득이는가 싶더니 이내 켈룩이며 기침을 쏟아내었다. 죽음이 네 얼굴 위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웃어보였다. 얼마 남지 않았구나, 고개를 드는 생각을 스쳐보내려 머리를 내저었다.
"나는 죽는 게 아니야, 앨리스. 캔자스로 돌아가는거지. 여기가 이상한 나라고, 오즈랜드인걸. 도로시는 단지 마법이 걸린 구두 뒷축을 세 번 부딪히기 전에 마지막으로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려고 하는 것 뿐이야."
"그냥 나랑 함께 있으면 안되는거야? 똑똑해진 허수아비랑, 따뜻한 마음의 양철나무꾼이랑, 용기를 배운 사자랑 강아지 토토랑 함께 이상한 나라에서 살 수는 없어?"
차가운 손이 뺨에 닿았다. 흰 손가락이 눈물을 한 방울 훔쳐내주었다. 새앙쥐라도 몇 마리 지나가는 모양인지, 천정이 삐걱인다. 천정 구멍에서 쏟아져들어오는 달빛이 창백히 공간을 밝혔다. 열에 달뜬 네 미소가 여름철 쓰레기장에 일렁이던 아지랑이처럼 금새 흩어질 것만 같아서 반복해 되뇌었다. 네 곁에 무릎 꿇은 다리가 저려온다. 가지 마, 가지 마.
"도로시는 긴 여행에 지쳐버렸어.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의식은 자꾸 흐려져가. 숙부와 숙모가 도로시랑 토토를 기다리고 있을거야. 자, 앨리스, 작별인사를 나누자."
"싫어. 이대로 죽어버리면 평생 미워할거야. 네가 없는 세상에서 버틸 수 없어.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거야."
"어서 대답해줘, 앨리스. 허수아비도 양철나무꾼도 사자도 도로시가 발꿈치를 세번 딱, 딱, 딱, 부딪히기 전에 포옹을 하고 눈물 흘리면서 배웅해줬는걸. 나를 사랑했어?"
시선 두개가 교차했다. 꼭 닮은 두 쌍의 눈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을 마주보았다. 뭐라고 답하지, 뭐라고 해야 할까. 상이 어그러져 눈을 꼭 감았다. 악몽을 꾼 밤 숨을 고르며 네 잠든 얼굴을 바라보면 마음이 놓여, 네가 다치면 내가 아프고 네가 우울해하면 내가 슬퍼. 혼자가 아닌 둘이었기에 버틸 수 있었어. 우리한테 내일이 없다는 것이 슬프고, 너와 보낼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바라게 돼. 우리 둘 다 불완전함에도 함께였기에 완전할 수 있었어. 너와 손을 잡고 있었기에 꿈을 꿀 수 있었고, 황혼 속에서도 일출을 기다릴 수 있었어. 온갖 미사여구가 머릿속을 가득 채워 웅웅대었다. 도로시. 내가 할 수 있던 말은 단지 그뿐이었다. 응, 앨리스. 나 여기 있어. 퍽 졸린듯한 네 목소리가 다정히 울렸다. 딱, 딱, 딱.
"나는 너를 사랑했고, 너를 사랑하고, 너를 사랑할거야."
밤 바람이 불었다.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눈을 뜨자 어느샌가 너는 고요히 밤에 잠겨있었다. 일평생 느긋한 성정의 너였기에 가는 길만은 서두르고 싶었을까. 너는 내 마지막 말을 들었을까, 내 마음을 전해 받았을까. 의미를 잃은 질문들을 끊임없이 네게 되물었으나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공허 속으로 흩어지기만을 반복했다. 퍼즐조각이 쓰레기장 바닥에 흩어졌다. 다시는 맞출 수 없겠지. 밤이었다. 눈물마저도 파도가 되어 밀려나가는 그런 밤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