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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어디에나 내려앉았다. 어슴푸레한 햇빛 반짝이는 새벽녘, 제 살결만큼이나 희디흰 치맛자락을 나부끼며 성긴 가지들 사이로 흐드러지게 피었다.
 풀벌레 우는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는 고요한 숲이 전부 그녀의 집이었으므로 그녀는 숲 전체를 감싸안으며 지상의 구름처럼 머물렀다.

 신록이 물기를 머금고 아름답게 반짝거리는 숲 속에서도 그녀가 특히 좋아하는 곳은 유리 호수였다. 
그녀는 파문 하나 없이 잔잔한 호수의 수면 위로 올라앉아 오색 찬란한 세상의 밝음으로부터 젖빛 차양을 쳤다. 제 소중한 호수의 깊은 곳까지 그 빛이 닿지 못하게끔.

 그녀는 종종 호숫가를 뒤덮은 채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물 속을 내려다보았다. 호수의 가장 밑바닥, 그 깊은 곳을. 그 속에, 그 남자가 있었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왜 물 속에 잠겨 있는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남자. 세상의 모든 말을 속삭이는 숲의 요정들조차도 그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어느 날엔가, 호숫가의 나무 사이를 거닐다 그를 처음 보게 된 이후로 그녀는 넋을 빼앗겼다. 
세상의 어떤 아름다움을 가져다 빚어내어야 이토록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싶은 사람이었다. 
산마루에 걸린 바람만큼이나 자유로운 그녀였으나 그 날 이후 감히 본성을 잊고 한 자리에 머물겠노라 결심했다. 그녀가 호수에 머무르기 시작했던 것은 그때부터였다. 
불청객들을 제 치맛자락으로 휘감아 내쫓기 시작했던 것도.

 독차지하고 싶었음이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를 그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어야 한다는 마음. 
설령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망연히 쳐다보는 일뿐이었을지라도. 다른 누군가가 이 호수에 발을 들였다면 그를 도와줄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녀는 고아하게 수면을 손끝으로 쓸었다. 희끄무레한 손끝은 수면을 뚫지 못하고 언저리만 언뜻언뜻 어루만졌다.
 그래, 그녀가 할 수 없는 일이라면 누구도 하지 않아야 옳았다. 

 내 소중한 보물에 다른 누군가가 먼저 손길을 뿌리는 일 따위는.

 손 닿을 수 없는 곳에 놓인 보물을 위하여 그녀는 오늘도 어김없이 세상의 빛을 집어삼켰다. 초점 없는 그의 눈동자가 올려다본 하늘에 오롯이 자신만이 있도록, 
그래서 그의 세상에 온통 자신뿐이도록 수면 위의 하늘을 새하얗게 덮었다. 닿고 싶었으나 닿을 수 없었으니 적어도 그가 자신만 바라볼 수 있게끔 만들었다. 
이따금 그와 눈이 마주치면 세상을 다 가진 양 행복에 겨워하기도 했다. 그녀의 모든 빛이 그 속에 있었다. 새파란 물 속에서도 선명하게 반짝거리는 그, 눈동자 속에.

 호수 속에 잠긴 이의 하늘은 그녀의 마음이 떠나지 않는 한 영영 같은 색이리라. 우물 안의 개구리는 넓은 세상을 알지 못한 채 죽는다.
 병적인 집착이었으나 남자가 그녀의 하늘에 어떤 생각을 품고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이미 너무 오랜 시간 당연한 풍경이었으니 그가 다른 곳에서 왔다 할지라도 원래 알고 있던 하늘을 망각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애달픈 그녀의 손길이 수면을 더듬거리자 남자는 눈을 떴다. 어떤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요란한 기색을 눈치라도 챈 것일까,
 그는 어떠한 감정의 고저 없이 조용히 미소지었다. 언제나 그랬듯 속을 알 수 없는 웃음이었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진의가 어찌 되었든 그녀는 저를 향한 미소에 취해 환희에 찬 웃음소리를 흘렸다.
 세상의 모든 것을 등지고도 기쁨에 겨울 수 있게 해 주는 것. 그녀의 세계에서 가장 소중하고 고귀한 것. 영원히 품에 안으리라.

 그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며, 남자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감정의 편린을 바라보면서도 그는 물 속에 잠긴 채 조용히 침잠했다.
 웃음의 의미도, 무엇 하나도 명확히 드러내지 않은 채 저에 대한 그녀의 집착을 그저 감내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그녀의 내리사랑이 빛을 보았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저를 향해 웃었건 뻗어도 닿지 못할 손길을 흩뿌리며 그녀는 오늘도 호숫가에 머물렀다. 
새된 웃음소리만큼이나 새하얗게 피어난 아네모네 꽃으로 화관을 만들어 쓰고선, 그의 하늘을 온통 제 색으로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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