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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무언가로 현관문 앞을 잔뜩 긁어놓은 범인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

직장에는 협박전화가 걸려왔다.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욕설을 퍼부었다. 그 사람들은 내가 전생에 용서 받을 수 없는 짓을 저질렀다고 했다. 나는 뭐라 대답할 말이 없어서 어물거리다가 끊었다. 가끔은 인터뷰를 문의하는 전화도 있었지만 전부 거절했다. 구설수에 오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일이 내 바람과 엇나가고 있었다. 내 전생은 이미 전 국민이 아는 이슈였다.

뉴스는 자꾸 나를 언급했다.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내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전생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어디서 출생해서, 어디서 자랐으며,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떻게 죽었는지. 나는 멍하니 TV를 보며 전생의 내가 저지른 범죄 목록을 들었다. 아니, 어떻게 저런 짓을 하고 다니면서 멀쩡히 잘 먹고 잘 살다 죽은 거지? 나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경악했고,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심한 죄의식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이 나라는 법조문에 전생과 현생을 다른 사람으로 간주한다는 걸 대원칙으로 박아 놓은 지 오래였다.

대원칙에 대해서는 이미 찬반논란이 오가는 중이었다. 나를 처벌해야 한다는 측은 다른 나라의 예를 들었다. 어떤 나라는 전생의 죄도 끝까지 처벌해서 죽은 시체를 대로변에 매달아놓는다고 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라서 그럴 수 없다는 건 슬픈 일이라고 했다.

내가 인터뷰 요청을 모두 거절한 탓에 대역이 대신 스튜디오에 나왔다. 대역은 내가 일상생활에 아주 곤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전생에 제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전혀 변명할 마음은 없습니다. 그건 진짜 끔찍한 일이에요. 하지만 저는 평생을 깨끗하게 살았어요. 기억에도 없는 일을 책임지란 말입니까?” 솔직한 내 심정을 대변해주긴 했다만, 나에게 뻔뻔한 이미지를 입히려는 의도가 담긴 연기였다. 나는 방송을 보며 악의를 느꼈다.

 

한 공무원의 실수로 전생의 내 신상정보가 유출되었다. 몇 개월 전 일이었다. 나는 자신도 몰랐던 사실을 알고 당황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아주, 많이 분노했다. 왜 저런 사악한 것이 지옥에 안 떨어지고 환생하고 있는 거야!

전생의 나는 지병이 있어서 저지른 범죄가 밝혀지기도 전에 편안히(병이 있었으니 얼마나 편했겠냐만, 사람들은 보통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죽어버렸다고 한다. 대원칙 덕분에 나는 감옥에 가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지. 나는 결국 사표를 냈다.

 

여론이 조용해지기 전까지 집안에 숨어 살기로 했다. 처음에는 너무 슬퍼서 제대로 잠도 자지 못했다. 한동안은 일을 할 수 없을 테고, 사회로 돌아가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모아둔 돈은 조금 있지만 오래 버티지는 못한다. 이전에 느꼈던 죄의식은 억울함에 짓눌려 사라졌다.

시간이 좀 더 지나자 나는 차분해졌다. 죽고 싶지는 않으니 체념한 것에 가까웠다. 그래. 시간이 흐르면 어차피 전부 잊힐 거다. 그때까지만 어떻게든 버티면 된다.

직장을 그만 두고 한 달여 간 여러 사람이 집 앞을 찾아왔다. 열 중 아홉은 정의감에 불타 협박을 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그 중 유난히 성가시게 군 두 명은 무사히 돌아가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찾아온 나머지 한 명은 내 신상정보를 실수로 유출시킨 공무원이었다. 그 뒤로 잘렸기 때문에 이제는 공무원이 아니다. 그러나 나와 달리 다른 곳에 취직해서 잘 살고 있는 모양이었다.

사과를 하러 온 줄 알았는데, 현관 앞에 서있던 그 전직 공무원은 예상치 못하게 싱글벙글한 표정이었다.

“당신을 구하러 왔어요.”

내가 인상을 썼다.

“아뇨.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전직 공무원이 내 옷자락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냅다 자신이 전생에 저지른 죄를 줄줄 나열했다. 사실이라면 이 사람도 나처럼 사회에서 매장 당해야 싼 인물이었다.

전직 공무원은 내가 집에 들여보내주고 나서야 사과를 했다. 정말 미안합니다. 고의로 퍼뜨린 건 아니에요.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얘기라서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솔직히 이 나라 사람들이 비정상적으로 착한 거라고 생각해요. 길가에 쓰레기 하나 버렸다고 어떻게 사람을 천하의 쓰레기로 모는지. 아, 그럼 착한 게 아니라 과하게 도덕적인 거라고 해야 하나?”

“하고 싶은 말이 뭔데요?”

“당신을 구하러 온 거라고 했잖아요.”

전직 공무원이 내 손을 덥석 잡았다. 나는 언짢아서 손을 빼냈다.

“저는 사실 당신 자료만 본 게 아닙니다.”

전직 공무원이 신이 나서 말했다.

먼저 아는 사람부터 얘기합시다. 우리 시의 시장 있죠? 전생에 악명 높은 연쇄살인범이었어요. 전생의 당신은 그래도 백 년 전 사람이지만 그 놈은 겨우 수십 년 전이라 유족들이 아직도 두 눈 뜨고 멀쩡히 살아있어서 알려지면 더 큰 문제라고요. 내 직장 동료였던 사람은 전생에 가족을 전부 때려 죽였고, 당신 옆집에 사는 아가씨만 해도 삼십 여명을 독살했죠. 또…….

“그러면 깨끗한 사람이 있기나 한가요?”

전직 공무원이 고발하는 사람이 열 명이 넘어갈 즈음에 내가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내 말을 들은 전직 공무원이 오히려 흥분해서 튀어 올랐다.

“그겁니다. 이 도시에서 전생에 중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겁니다. 그럼 당신이 한 짓이 뭐 대수겠어요. 이게 알려지기만 하면 당신이 매장당할 이유는 전혀 없죠. 전혀.”

나는 시끄러운 사람과 상성이 맞지 않다. 결국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는 전직 공무원에게 물을 떠다 줬다.

“그래서 어떻게 밝힐 생각이에요? 나가서 떠들어봤자 믿어줄 사람이 별로 없을 거 같은데.”

“방법이 있죠. 간단한데 좀 성가십니다.”

전직 공무원이 목소리를 낮췄다.

“시장에게 자각을 갖게 합시다.”

전직 공무원이 말하는 방법이란 건, 시장에게 전생의 기억과 관련된 암시를 주어서 자신의 전생에 의문을 갖게 하고 스스로 기록을 찾아보도록 유도하자는 거였다. 전생의 기록을 볼 때 자신의 기록뿐만 아니라 연이 있었던 사람들의 전생과 현생도 같이 배열되기 때문에 시장은 이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전생에 범죄자였음을 금세 알게 될 거라는 거다. 그리고 시장의 전생에 대한 정보를 시장의 정적에게 귀띔해버려서, 정적에게 물어 뜯기던 시장이 참다못해 모든 진실을 폭로하는 게 전직 공무원의 계획이었다.

“그게 전부 의도대로 될까요?”

나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 애초에 시장에게 어떻게 암시를 줘야 할지도 모르겠고, 암시를 받았다고 해서 자기 전생에 대해 찾아볼 지도 의문이었다.

“아뇨. 의외로 전생을 떠올리게 하는 건 쉽습니다. 전생에 쓰던 물건만 봐도 느낌이 와요. 저도 실험해봤어요.”

전직 공무원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 손에 쥐어주었다. 낡은 반지였다. 전직 공무원은 다음에 또 오겠다고 했다.

 

나는 반지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반지는 녹슨 냄새가 났고 가운데 박힌 가짜 보석 때문에 더 볼품없어 보였다.

전직 공무원이 다녀간 뒤, 한동안은 식사를 거의 하지 않고 불을 끈 채 이불 속에서 뒤척이다가 잤다. 가끔은 TV를 켜고 내 전생을 재연한 프로그램을 감상했다. 죄의식을 잡아먹을 정도로 컸던 억울함은 궁금증으로 바뀐 지 오래였다. 전생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지?

이 나라 사람들은 비정상적으로 도덕적이에요, 라고 말하는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반지를 빤히 보며 무언가 떠오르려 하는 감각을 붙잡으려 애썼다. 쉽지 않았다.

 

전직 공무원이 다시 방문했을 때 나는 그 얼굴을 보자마자 불만을 터뜨렸다. 요 며칠 간 생각하고 생각한 결과였다.

“이해가 안 갑니다. 제가 ■■■한 게 그렇게 큰 죄라고 다들 이 난리를 쳤던 건가요?”

“그렇죠. 이상하지요? 저도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전직 공무원이 슬쩍 손에 깍지를 끼려고 시도했다. 나는 이번에도 언짢아하며 손을 풀었다.

“아니. 우린 전생에 사귀었잖아요.”

“지금은 아니니까.”

놀라서 쓰러질 뻔 했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넘겼다. 어쩐지 날 보는 시선이 심상치 않더니.

“전 동성한테는 관심 없으니까 허튼 짓 말고,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할지나 생각합시다. 맨땅에 부딪히는 거라도.”

전직 공무원은 구애를 거절당해서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내가 전보다 적극적인 태도로 나오자 의욕이 솟는 것 같았다. 그는 반지를 준 보람이 있다고 중얼거렸다.

전직 공무원은 가방에서 그동안 모아둔 자료묶음을 꺼냈다. 시장의 전생에 대한 자료였다. 조금만 훑어봐도 시장의 전적이 화려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유쾌하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떠들었고 반드시, 꼭 성공해야 한다고 의지를 불태웠다. 하지만 나는 성공하면 즐겁겠고 실패해도 그리 상심하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그저 이 사람의 실수로 경제적인 능력을 잃었으니까 양심이 있으면 책임지고 먹고 살 수 있게는 해주겠지. 그 뿐이었다.

그는 저번에 차마 털어놓지 못했지만, 계획이 끝까지 잘 풀린다면 기념 삼아 자리에서 내쫓긴 시장을 혼란 속에서 남몰래 암매장하는 이벤트도 생각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왜 하필 시장을 골랐어요? 교육감도 전생에 경력이 만만치 않은 거 같던데. 알려지면 교육감 쪽이 더 치명적인 거 아닌가?”

“이기적이고, 적도 많고…….”

나는 비도덕적인 얘기를 하면서도 화기애애한 빛을 띠고 있는 전직 공무원의 얼굴을 내 손에 끼워진 반지를 볼 때처럼 빤히 쳐다보았다. 떠오를 듯 떠오르지 않던 무언가가 손에 잡힐 것 같았다.

내 일생을 재현하려고 노력한 방송작가들 덕분에 전생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대충은 알겠다. 그렇지만 전생의 기억이 돌아오는 일은 여전히 없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아니지. 그가 자신의 전생을 떠올리기 전에, 현직 공무원이었을 때도 이런 성격이었을까? 아마 아니었을 거라고.

오늘은 제법 많은 얘기를 했다. 우리는 내일 다시 만나서 또 대화를 하기로 했다. 전직 공무원이 곁에 내려놓은 담배 갑에 무심코 손이 갔다. 혀끝이 마르는 듯한 금단증상이 느껴졌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는 담배를 피운 적이 없어서, 손을 거두었다.

아무래도 혼동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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