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대, 나 여기에 있어요.
그대는 어디쯤에 있나요?
당신을 만나서 참 좋았다
다수
그대를 만나기 삼일 전.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어 자꾸만 웃음을 짓고 정신을 차리지 못해. 나는 한참을 이불 위에 늘어지다 힘주어 눈을 끔벅이고 팔을 위로 뻗어 기지개를 폈다. 끄응, 앓는 소리를 흘리고 몸을 일으켰다. 너, 오늘도 잘 잤어? 일어나자마자 폰을 쥐고 너에게 문자를 보냈다. 여전히 답장이 없어도 나는 그저 설레기만 해 웃음을 흘렸다.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어, 가볍게 화장을 하고서 밖을 나섰다. 길거리에 늘어진 이 예쁜 배경을 너에게도 보여주고 싶어 다른 사람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찍어 너에게 보냈다.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너의 숫자 1. 괜찮아, 그래도 좋아해요. 수줍게 웃음을 터트리고 길거리를 거닐었다.
이거 귀엽다, 아 저것도! 아 세상에... 너 너무 귀여워! 새로 들어온 가게에 아기자기한 인형들이 나란히 서있었다. 귀여워라. 귀여운 걸 좋아한다고 했었지. 어떤 걸 선물할까 둘러보다 저기 구석에 놓여있는 작은 여우가 눈에 띄어 걸음을 옮겼다. 안녕 여우야. 속마음으로 여우에게 인사를 건넸다. 여우는 앞을 보고 두 앞발을 뒤로 감추고 있었는데 뒤에 비치는 유리창을 보니 작은 하트를 손에 쥐고 있었다. 꼭 사랑을 고백하려 하는 사람 같아 나는 고민도 없이 여우를 쥐고 계산대에 가 계산을 했다. 너에게 줄 내 작은 선물 하나.
후덥지근한 날씨에 결국 카페에 들어가 녹차 프라페를 시켰다. 별로 녹차를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녹차 녹차 노래를 부르던 너에게 옮았을까, 습관처럼 녹차음료를 시키고 말았다. 금방 나온 녹차 프라페는 시원하고, 달콤하고, 녹차 특유의 떫은 맛이 조화를 이루었다. 나는 다시 폰을 켜 나와 녹차 프라페를 같이 찍었다. 그리고 너에게 전송. [ 너무 더워서 녹차 프라페 먹는 중! 부럽지?] 비록 너와 함께할 순 없지만 함께하는 것 같이 느껴질 수 있게 나는 틈만나면 사진을 찍어 너에게 보냈다. 벌써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이제 곧 달님이 뜨면 우리 만날 수 있겠죠.
[짠짠짠 집에 왔어요! - 나]
[그대 - 왜 이제 들어와]
[그대 - 늦었잖아]
[그게 길거리에 예쁜 게 너무 많아서 - 나]
[구경하느라! - 나]
[그러는 넌 확인도 안 했으면서 - 나]
[그대 - 미안 바빴어]
[그대 - 이야기하느라...]
[그대 - 싫다는데 자꾸 강요하니까]
[그대 - 이야기가 길어져서]
[그랬어? 기분 안 좋았겠다 - 나]
[하지만 나랑 데이트했으니까 - 나]
[기분 다시 좋겠네! - 나]
[ㅋㅋㅋㅋㅋ - 나]
[그대 - 헐 노잼]
[뭐야????? - 나]
[그대 - 장난]
[그대 - 좋았어 오늘도]
밤마다 이루어지는 우리의 속삭임은 아무도 들을 수 없다. 너무도 간질간질한 우리의 시간은 일분일초가 너무 빨리 가버렸다. 일분이 일 년같았으면, 하고 생각도 해보지만 어서 너를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에 나는 이 생각을 그만두기로 했다. 오늘 몸은 좀 어떻고? 나름 괜찮은 거 같아. 평소처럼 마지막을 장식하며 우리는 대화를 끝냈다. 오늘도 하루가 끝났다. 벌써 내일이 와 오늘이 되어버렸다. 눈을 감았다. 이제는 흐릿해져버린 너의 얼굴을 떠올리자 잠이 들었다. 꿈에서 너가 나타날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안녕 그대야, 보고 싶었어. 꿈속에서 너에게 말을 건네보았다. 네가 웃는다. 웃었다. 아아, 오늘 하루도 너를 그리며 나는 밤을 보낸다.
***
그대를 만나기 이틀 전, 자꾸만 꿈이 너로 가득 차 일어날 때마다 아쉬움을 토해내. 일어났어. 역시나 아침의 시작은 너에게 먼저 보냈다. 가기 싫어라... 억지로 몸을 일으켜서 꾸역꾸역 옷을 챙겨 입었다. 잘 보일 사람 어디 있다고 이렇게 챙겨 입어야 하지? 혼자 중얼거리다 머리를 감으려 틀어놨던 보일러를 끄고 편한 바지로 갈아입었다. 오늘 수업도 몇 개 없으니까 괜찮아 괜찮아. 나 스스로를 도닥이며. 학교 가는 중이야. 걷고 있는 길을 찰칵 찍어 보냈다. 학교가? 어라. 이 시간에 답장이 올 리가 없는데. 나는 놀란 눈을 하고 급하게 다다다 톡을 보냈다. 뭐야 뭐야 뭐야. 내 반응에 너는 ㅋㅋㅋ 짧게 답을 보내고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놀랐어?]
오랜만에 듣는 네 목소리는 변함없이 다정해서 괜히 가슴이 뛰었다. 나는 당황스럽고 떨리는 마음에 더듬거리며 목소리를 내었다. 너 뭐 하는데 지금 전화를... 말 끝을 흐리며 물으니 작게 소곤소곤 거리는 네 목소리가 들렸다. 나 지금 숨어있어. 나는 열심히 움직이던 다리도 멈춘 채 가만히 서있었다. 이렇게 전화하는 것도 좋지만 너가 아프지 않은 더 좋았다 나는. 조곤조곤 너를 달래며 다시 돌아가라고 해보아도 너는 묵묵부답, 답이 없었다. 너는 정말 변함없이 고집이 세고 어린아이 같았다. 그대야, 아프지 말아. 속으로 속삭이며 네 대답을 기다렸다. 나는 멈춘 다리를 다시 움직여 걸음을 옮겼다. 너 학교 도착할 때까지만.
"응?"
[너 학교 도착할 때까지만 전화할게.]
마지못해 대답하는 네가 사랑스러워 웃음을 터트렸다. 응, 우리 건강하게 봐야지. 나는 가던 걸음을 틀었다. 시간은 많이 남았으니 조금 돌아가도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하고. 텍스트로 읽는 너의 말과 목소리로 듣는 너의 말은 확연히 달랐다. 너의 감정, 머뭇거림, 웃음소리까지도 이렇게 생생히 전해지는데. 천천히 동네를 빙 돌고 돌아 결국 도착지점에 도달해버렸다. 아쉬움에 한숨을 삼켰다. 갑자기 말이 없는 나의 의문을 품은 부름이 들려왔다. 여보세요? 끊켰나. 아니야 나 지금 학교라. 아... 아쉬움이 가득한 탄식에 나 역시도 아쉬움을 한가득 담아 웃음을 흘렸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가버렸다. 너와 함께하는 시간은 누가 잡아당기기라도 하는 거처럼 너무 빨리 가버리는 거 같아.
"나 그럼 수업 듣고 올게, 도망가지 말고 치료받고."
[잔소리꾼. 엄마야?]
"난 너의 두 번째 마미야. 마미라고 불러봐."
[뭐래.]
크크 서로 웃음을 터트리고 잠시 말이 없었다. 너도 나도 이 전화를 끊기가 싫은 거겠지. 끊을게, 사랑해. 내가 속삭였다. 응, 나도 사랑해. 네가 대답했다. 전화가 끊기고 그제야 잔뜩 달아오른 휴대폰의 온기가 느껴졌다. 아뜨! 비명을 지르고 엄지와 검지로 휴대폰을 쥐었다. 나는 다시 휴대폰을 바로 쥐고 카메라 앱에 들어갔다. 카메라에 내 모습이 보였다. 동그란 안경에 하나로 묶은 머리, 틴트만 바른 입술. 와 나 엄청나잖아. 내 몰골을 확인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다시 웃음을 지었다. 얼굴 옆에 브이를 하고 입꼬리를 올려 웃음을 지었다. 치즈, 찰칵. 얼른 너에게 보내곤 그 아래로 두다다 톡을 보냈다. 나 너무 추리하다ㅠㅠ. 아직 돌아가지 않았는지 숫자 1이 사라졌다. 한참을 기다려도 답장이 없다. 너무 못생겨서 충격받았나...? 이제 막 걱정스러워 질 때쯤 짧게 답장이 도착했다.
[예뻐]
아아
그대를 만나기 하루 전, 종일 심장이 쿵쾅거려 터져버릴 거 같아.
***
잘, 지냈어? 내 물음에 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보다 많이 빠진 살에 나는 네 손을 살며시 쥐었다. 예쁘네, 오늘도. 네 말에 나는 웃음을 지었다. 열어둔 참문을 통해 바람이 내 치맛자락과 머리카락을 스쳐 지나갔다. 맑게 내려오는 햇볕이 따사로워 눈가를 찡긋거렸다. 가고 싶은 곳 있어? 내 말에 너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바다, 하고 짧게 대답했다. 근데 못 가잖아. 너는 그렇게 말하며 푸스스 웃음을 흘렸다.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웃음이 나오질 않았다. 가만히 네 손을 쥐고 너를 바라봤다. 원래는 내 눈높이보다 위에 있어야 하는데 누워있느라 한참 낮아진 너를 내려보았다. 나 보고 싶었지. 응, 보고 싶었어. 우리는 십 년을 헤어졌다 만난 연인처럼 서로를 눈에 새기기 바빴다. 움푹 들어간 네 눈두덩을 시작으로 여전히 하늘 높은 지 모르고 솟은 콧대와 바짝 마른 네 입술을 훑어 내렸다.
"바다 보고 싶어?"
"응 바다 보고 싶다."
"그래서 내가 다녀왔어."
진짜? 놀란 네 목소리가 들려 나는 웃음을 지었다. 짠, 하고 카메라를 꺼냈다. 원래는 네 것이었을 카메라를 챙겨 몰래 찍고 다녔는데 이건 몰랐을 거다. 네 상체를 일으켜 침대를 고정시키고 네 옆에서 카메라를 쥐여줬다. 이건 여수, 여긴 해운대. 여기저기 돌아다닌 사진을 보여주며 너에게 설명했다. 여기서 조개 먹었구, 여기선 회 먹었어. 아 제주도도 다녀왔는데. 널 생각하며 거닌 거리를 다시 너와 함께 보고 있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너는 아무런 말도 없이 내가 보여준, 내가 찍었던 사진을 빤히 바라만 봤다. 흐트러진 네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손가락을 끼워 살살 쓸어 넘겼다. 매끈한 이마가 드러나고 나는 고개를 숙여 입술을 맞췄다. 내 입맞춤에 너는 눈을 위로 올려 나를 바라봤다.
"왜 집이야?"
"응?"
"왜 집에 있냐구, 집에 있으면 아플 텐데."
말했잖아, 병원 싫다고. 아, 이 사진 예쁘다.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과 배경으로 바다가 보이는 사진을 내게 보여주며 너는 실실 웃었다. 바보 멍청이. 뾰로통하게 너를 바라보다 전에 사두었던 인형이 떠올라 가방을 챙겨 주섬주섬 안을 뒤졌다. 여기 있을 텐데. 아, 찾았다. 빨간 리본을 감아 장식한 여우 인형을 너에게 내밀었다. 너는 인형을 이리저리 살펴보다 나와 인형을 번갈아보더니 씩 웃음을 그렸다. 너 닮았어. 응 맞아, 그래서 사왔어. 너는 여우를 소중히 감싸 쥐고 입술을 삐죽 내밀어 코에 대었다. 정작 뽀뽀해줄 사람은 여기 있는데 어디다 뽀뽀하는 거야? 내가 빽 소리를 치니 네 손이 내 뒤통수를 감싸 쥐고 끌어당겼다.
"우리 뽀뽀 안 한지 오래됐지."
바로 앞에서 속삭이니 네 더운 숨결이 피부에 닿았다. 간지러움에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너는 눈을 감고 나를 당겼다. 서로의 온기를 느끼듯 우리는 한참을 입술을 맞대고 있었다. 이제는 퍼석해진 네 입술이, 말라버린 네 피부가 나는 그렇게도 애달았던가. 꾹, 내 입술로 네 입술을 가볍게 물고 떨어졌다. 네 입술에 얼룩덜룩 붉게 묻은 립스틱이 귀여워 볼을 꼬집었다. 우리는 달큰한 사랑을 나누는 연인처럼, 서로에게 사랑을 속삭였다. 사랑해. 나도 사랑해. 속삭이는 단어마다 어째서 쓴웃음이 가득 맺혔는지.
시간은 돛단배를 타고 흘러 흘러버려, 잡을 수도 멈출 수도 없었다. 가기 싫은 마음이 너무도 커 자꾸만 머뭇거리는 내 모습을 본 너는 흐리게 웃음을 지었다. 뭐가 좋다고 웃어 바보야, 하고 꾸짖으니 너는 내 손을 살며시 감싸 쥐었다. 너는 내 손을 한참을 만지작거리고 바라보다 시선을 들어 나와 눈을 맞췄다. 내 검은 눈동자에 가득 네 모습이 들어찼다. 앙상하게 마른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운 너는 그제야 나보다 더 높은 눈높이에서 내려다 보았다. 말랐음에도 뜨거운 손의 온기에 나는 화상을 입을 것만 같았다. 눈물이 나올 거 같아서 숨을 삼키고 눈을 크게 떴다. 그래도 자꾸 흐려지는 시야에, 고이고 고여 눈물길을 만들며 떨어지는 물방울에. 작게 흐느꼈다.
"오늘이 마지막이네."
"...."
"미안해, 항상 같이 있자고 했는데 이렇게 가게 돼서. 이렇게 아파서 미안해. 마음고생 시켜서 미안해."
"왜 미안해 왜."
아.
"그거 알아? 별 이랑 사람을 구성하는 성분이 같대. 나는 별이 되는 거야. 그래서 밤마다 널 찾아갈게."
나는 결국 고개를 숙이고 네 손에 이마를 대고 눈물을 떨궜다. 애써 밝은 척해봤는데도 도저히 감쳐지지가 않았다. 나는 너와 헤어지기 싫어.
"가지 마, 날 두고 가지 마. 별이 되지 말고 내 옆에 남아줘."
울음이 가득 섞인 진심이 너에게 온전히 다 전해졌을까 걱정했다. 너는 내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다가 고개를 숙여 이마를 맞대었다. 내 손등 위로 떨어지는 내 것이 아닌 눈물에 나는 놀라 고개를 들었다. 슬픔이 가득 차 넘쳐버린 네 모습에 나는 기어이 참아온 울음보를 터트렸다. 갓 태어난 아기처럼 울음을 흘렸다. 우리의 사랑이 이렇게 바스러져 바람에 흩날려 버렸다. 자의가 아닌 것에 우리는 헤어져야만 했다. 손이 덜덜 떨렸다. 슬픔이란 감정에 나는 몸을 제어할 수가 없었다. 물기가 가득 한 눈을 억지로 끔벅이고 크게 떠 선명하게 너를 담았다. 흐려지는 시야에도 억지로 눈물을 삼켜 너를 눈에 담았다. 마지막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서.
네 손을 쥔 내 손을 들었다. 눈으로 너를 바라보며 네 손을 제 입술 가까이 대었다. 촉, 손가락에 입술을 맞추는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시야는 까맣게 점멸되고 입술로 네 온기만이 전해졌다. 사랑해, 그렇게 속삭였다. 내 마음을 들었을까.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대충 싸둔 짐을 챙기고 너를 떠났다. 모래주머니를 단 사람처럼 나는 발이 땅으로 푹푹 꺼지는 기분이 들었다. 느린 걸음에 너와 너가 있는 집은 천천히 작아지고 한참이 지난 후에 작은 점이 되었다.
너를 만나서 참 좋았다.
너를 알아서 참 좋았다.
너와 함께라 참 좋았다.
그대 나 여기에 있어요.
그대는 이미 하늘인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