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퀴엠, 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나는 여지껏 세 번의 레퀴엠을 들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당신을 향한 것입니다. 나는 당신에게 그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요. 흰 쌀밥 속에 섞인 머리카락을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당신과 나의 집은 조용합니다. 가끔씩 고양이가 우는 걸 빼면 말입니다. 그 적막 속에서 나는 가끔 당신의 목소리를 듣곤 합니다. 당신은 나를 부릅니다. 고개를 돌려 그 방향을 바라보면 있어야 할 당신은 온데간데없고 텅 빈 공간만이 있곤 합니다. 그것이 싫어 나는 빈 공간들을 온갖 것들로 채워버렸습니다. 종이 더미와 나무 판자들로 이루어진 물건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럼에도 당신의 목소리는 이 공간이 아닌 내게 속하는 것이어서 또 다시 나를 부르곤 합니다.
당신과 나의 동네는 조용합니다. 나는 여전히 커피를 내리고, 손님들과 이야기를 하고, 설거지를 합니다. 요즘도 손님들은 이런저런 고민들을 내게 풀어놓고 갑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듣는 것이 전부이지만, 손님들은 퍽 만족한 표정으로 떠나곤 하니 나는 생각보다 편안한 사람인가 봅니다. 밤에는 가게 앞 테라스에 앉아 담배를 피우기도 하지요. 당신이 없는 것만 빼면 동네에 달라진 것은 많이 없어 보입니다. 어쩌면 당신의 부재는 내게만 크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나라는 인간의 본질은 생각보다 추잡한 것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태우고 나면 가루밖에 남지 않는 그것과 그것을 둘러싼 살점과 근육 다발과 온갖 종류의 액체와 뭐라 불러야 하는 지 모르는 몇 가지 것들. 그게 모여 만들어진 나는 참 별 것 아닙니다. 당신은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을 알면 뭐라고 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아, 당신은 오늘도 나를 부르는군요. 오늘은 우리의 아이와 함께 온 것인지 어린 아이의 목소리도 들립니다. 손에 들고 있는 펜을 내려놓고 나서 당신을 바라보고, 우리의 아이를 바라보면 나는 다시금 혼자가 되겠지요.
하지만 나는 인사할 겁니다. 안녕. 당신을 맞이하면서. 안녕. 당신을 보내면서. 안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