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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롱한 가운데 묵직한 감각이 팔을 우그러뜨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파. 무의식적으로 떠올린 생각을 뒤로하고, 좀처럼 위로 들려 올라가지 않는 눈꺼풀을 들어 올려 시야를 확인했다.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 동공에 담겼다. 알약 수십 개를 씹어 삼키고 눈을 감기 직전 보았던 하얗게 도배된 천장이 아닌, 샛노랗고 붉은 열기를 품은 잿빛 하늘이었다.

아아, 세상은 어김없이 무너졌구나.

    실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매캐한 공기가 폐부에 들이차니 기침도 함께 튀어나왔다. 가슴이 들썩이자 알싸한 아픔이 찾아왔다. 의식 없는 새에 다치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이 상황, 무의식이 만들어낸 꿈일지도 모르나, 전신을 타고 기어오르는 통증을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았다. 하하, 정말 이렇게 되어버렸구나. 정말로. 확신하듯 중얼거렸다. 입안의 수분이 바짝 말라 텁텁했다. 물이 마시고 싶다.

    그래, 어쨌든 세상은 시나리오대로 망가졌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 해서 저가 예언자라거나 정신병자라거나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은 하등 쓸모없는 소식만 전해주던 텔레비전에서, 어쩌면 누군가는 예견했을지도 모르는 ‘그 사건’을 목격했고, 의식이 끊기기 전까지 멸망의 카운트다운을 읊어대는 라디오 소리를 듣고 있었을 뿐이었다. 간단한 의미로 말하면, 그저 그런 이유로 ‘알고 있었을 뿐’이며, 이건 저 말고 다른 이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래, 알고는 있었지. 그게 정말 현실로 닥쳐올 거라는 감각은 이상하리만치 없었지만. 그도 그럴 것이,

 

​

그 누구도

​

달이 지구로 떨어질 거라고는

​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

    뭐, 정신 나간 사이언스 픽션의 거장들은 한 번쯤 생각해봤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게 저나 다른 사람들은 아니었으니. 평범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소시민들에게 ‘달이 폭파되어 잔해가 지구로 떨어질 예정’이라는 뉴스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사건이나 현상에 이름 붙이길 좋아하는 이들은 이를 일컬어 ‘문 스트라이크(Moonstrike)’라 명명했다. 그래, 빌어먹을 놈의 문 스트라이크. 텔레비전이고 신문이고 라디오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NASA 직원이라든가 과학자들을 초빙해 달이 얼마만큼이나 지구에 가까워졌는지, 얼마의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지 중계했다. 하지만 그들 중에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설명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그저 우주로 영역을 넓힌 몇 국가들의 이해관계와 관련된 것이 아닌지 조용히 추측할 뿐이었다.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지구가 위험한 상황에도 이해관계를 따지는 그것들은 병신 중에서도 상병신이겠지.

    그런 와중에 달의 잔해가 떨어진 뒤에 벌어질 파장을 시뮬레이팅한 다큐멘터리가 빠르게 제작되었고, 사람들을 집단 공황상태에 빠졌다. 우리나라에서만 하루에도 수십 명이 살을 기도하고, 수천, 수만 명이 삶을 일궈나가기를 포기했다. 물론 예외도 존재했는데, 종말의 날까지도 생업이라든가 제 할 일을 마치고 귀가한 이들이 그런 존재였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우습기도. 지구가 멸망한다는데 스피노자 새끼처럼 사과나무 심을 시간이 대체 어디 있다고. 진짜 정신 나간 건 그쪽이지.

    머리가 망가지기라도 했는지 아까부터 자꾸만 실없는 생각들이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아까처럼 소리 내어 웃어보려다가 이번엔 코끝만 씰룩이고 말았다. 팔이 어떻게 되었는지, 가슴께의 상처는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직접 보고 나면 더 아플 것 같아 눈도 돌리지 않고 있던 터였다. 그런 와중에 더 이상 아플만한 짓을 하는 건 사양이었다. 몸이 슬슬 버티기 힘든 모양인지 잘게 떨려왔다. 온전한 정신으로 생지옥을 맛보고 싶지 않아 적어도 자는 동안에 이 몸뚱이가 고통 없이 죽어있길 바랐다. 하지만 빌어먹게도 신은 제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고, 이렇게 눈 뜬 채로 다가오는 지옥을 맞이하게 되었다.

    지구에 떨어진, 혹은 떨어질 달의 파편은 총 일곱 개. 어떤 정신 나간 학자는 파편에다 그것들이 떨어질 나라에서 쓰이는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한다. 그렇담 미국에 떨어지는 건 제이콥, 중국에 떨어지는 건 샤오메이, 뭐 이런 건가. 우리나라에 떨어지는 운석이 있다면 그건 철수나 영희쯤 되겠네. 흐, 하고 김빠진 웃음이 흘러나왔다. 라디오에서 마지막으로 들은 것은 산둥반도에 떨어질-밖에 나뒹굴고 있는 제 꼬락서니를 보아하니 이미 떨어진- 파편의 소식이었다. 앞으로 남은 파편은 몇 개쯤 될까.

    그리고 나는 언제쯤 죽게 될까?

    그리 중얼거리며 다시금 하늘을 바라보니, 아까보다 짙어진 붉은 색, 천정天頂에서부터 흘러내리는 유성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벌겋게 타오르는 암석덩어리였다. 이렇게나 선명한 것을 보아하니, 꽤나 가까운 곳에, 머지않은 시간에 떨어질 예정인 모양이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달은 점점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아까는 실감하지 못했는데, 이 정도 거리쯤 되니 지금 떨어지고 있는 파편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짐작이 되었다. 만약 코앞까지 다가온다면-물론 그 전에 흔적도 없이 증발하겠지만-눈으로 좇기도 버거울 법한 크기였다. 기분 탓인지도 모르나 그것이 지구와의 거리를 좁혀올수록 주변이 점점 더워지는 것 같았다. 대기권에서 불타며 떨어지고 있는 운석을 생각하면 당연한 건가. 새삼 현실로 다가오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떠다녔다.

    나는 곧 죽게 되겠지. 어쩌면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고 죽을지도 몰라.

이 와중에,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는 어린 시절에 엄마가 읽어주었던 짧은 동화가 떠올랐다. 누군가 제 생각을 읽는다면 참 정신머리 없는 년이라 손가락질할지도 모르지만, 갑자기 그 이야기가 떠올랐다. 방금 본 달의 조각만큼이나 눈에 선명하게 파고드는 활자, 분명 직업병의 일부이리라.

    그것은 달에 대한 이야기였다. 달의 공주님이 지구 왕자님을 사랑하여 그 주변을 뱅뱅 맴돌고 있다고. 낮에는 부끄러워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밤이 되면 왕자를 지켜보기 위해 몰래 밤의 장막에서 고개를 내밀고 왕자를 지켜보고 있다는, 그런 실없는 어린아이들 이야기.

    만약 지금 떨어지고 있는 달이 공주님이라면, 왕자를 연모하는 마음을 더는 숨기지 못하고 사랑을 전하기 위해 다가오는 것일까. 거기까지 생각하곤 자조적으로 웃고 말았다. 하다 하다 현실을 동화로 치환하기까지 하다니, 바보 같잖아. 묵직한 두통이 밀려와 눈을 감았다. 눈꺼풀의 장막 안에서 은하수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발밑이 푹 꺼지는 듯한 감각이 아찔했다.

    그 상태로 심호흡을 열 번 정도 하고 눈을 한 번 더 꾸욱 감았다 떴다. 다시금 바라본 하늘에는 달의 파편 대신 상상으로만 그려왔던 달의 공주님이 자리하고 있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꿈을 꾸는 것도 같았다. 별가루를 뿌린 듯 반짝반짝 빛나는 금발은 붉은빛으로 화하고, 드레스 자락은 바람에 나폴나폴 흔들렸다. 절로 시선을 뺏길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마치 만화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참으로 비현실적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달의 공주가 이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마치 손을 잡아달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정신이 몽롱해진 가운데 저도 모르게 그 황홀함에 손을 뻗었다. 공주의 손은 허공에서 잡힐 듯 잡히지 않을 듯 가벼이 흔들렸다. 그 광경을 바라보니 어쩐지 몸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목울대가 바싹 타들어 갔다.

    분명히 느끼건대 달의 공주가 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누군가 시간을 느리게 해둔 것처럼 그녀는 서서히, 아주 천천히, 거꾸로 된 채로 떨어지고 있었다. 마법에 걸린 것처럼 가만히 그 광경을 바라보기만 했다.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간신히 손끝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거리에서, 달의 공주가 두 손을 뻗었다. 그리고 자신의 양 뺨을 감싸왔다. 당연하다는 듯 그 손위로 제 손을 겹쳤다. 불에 덴 듯 뜨거운 온도였다.

째깍, 째깍. 시계를 삼켜버린 악어처럼 몸속에서 시계 초침 소리가 날뛰었다. 공주가 제 눈을 마주했다. 그리고 따사로운 햇살처럼 웃었다. 달의 공주님이 태양처럼 웃는다는 표현은 모순적이지만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가 없었다. 공주의 웃음에 제 입꼬리도 당연하다는 듯 끌려 올라갔다.

    그리고 달의 공주는, 제게 얼굴을 가까이했다. 느릿한 숨이 코끝을 간질였다.

    …안녕, 내 사랑.

    누구에게 말하는 건지 모를 환청과도 같은 인사와 함께, 붉디붉은 그 입술이 자신의 입술에 닿았다. 극도의 열기와 함께 모든 것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이렇게나 뜨거운데 참 이상하게도 아프지는 않았다. 입맞춤의 감각을 느끼며 진심을 다해 웃었다. 폐부가 뜯겨나갈 것 같았지만 개의치 않고 웃었다. 달의 공주도 웃고 있었다. 마지막까지도 공주의 모습을 눈에 담다가, 천천히 눈꺼풀을 닫았다. 제 몸이 제 것이 아닌 것 같았지만, 이대로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이윽고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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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인류가 목도한, 지상 최후의 입맞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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