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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아버님은 무탈하시고 어머님 또한 평안하시다. 지금 집안은 상단 일로 소란스러우니 좀 더 게 있다 올라오려무나. 허고, 몸은 좀 괜찮은 게야? 네 몸도 몸이고 집안일도 집안일이지만 나는 네가 한시라도 빨리 과거에 급제하여 집안의 명성을…’

한참을 구구절절 읊어 내려가던 편지를 냅다 구겨 방 한구석으로 내던졌다. 형님이라는 작자는 도대체 얼마나 저를 긁어놓고 뒤집어놓아야 속이 시원한 건가. 신경 쓰인다며 이 지방으로 내보낸 것이 벌써 5년이었다. 말이 좋아 요양 차 내려 보낸 것이었지 결국 제 입지가 좁아지니 지방의 한구석으로 내쫓아버린 것이 아닌가. 그래 놓고는 이제야 살가운 형님인 척 친근히 편지를 다 보내는 행태가 참으로 역겨웠다.

울컥울컥 차오르는 속을 어찌하지 못해 신을 신고 나와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니 바닷가였다. 거친 바위에 날카로이 부딪히는 파도가 좋아 그대로 해변을 따라 한참을 걷던 와중에 작게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발 아래로 달칵이며 움직이는 자갈 소리도 아니었고 세차게 밀려와 바스러지는 파도 소리도 아니었다. 분명 사람의 소리가 맞았는데, 참 요상한 것이 자신이 서 있는 부근은 죄 암석인데다 지형도 거칠기 짝이 없어 어느 여인네도 아이들도 오기를 꺼려하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뉘가 예서 훌쩍이누?’

둘레둘레 아무리 주변을 샅샅이 훑어보아도 사람의 옷자락 끄트머리도 보이지 않았다.

‘허, 이젠 헛소리마저 들리는 건가?’

아무래도 집으로 돌아가면 몸에 좋은 식단이라도 올리라 말해야겠다고 생각하던 때에, 또 다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조금 더 가까운 곳, 바로 자신의 발 밑에서.

 

*

 

가파른 절벽 아래로 빼꼼이 머리를 내밀자 발길에 차여 후두두 떨어지는 모래들 사이로 보이는 바다에는 웬 여인이 하나 있었는데, 저도 모르게 숨죽여 바라보게 할 만치 아름다웠다. 곱게 땋아 내린 머리 사이로 앙증맞게 삐져나온 잔머리 하며 고운 목선이며 모다 고왔다. 보일 듯 말 듯 움직이는 가는 손가락이 마치 어린 시절 당과를 감싼 한지를 한 겹 한 겹 벗겨내던 그 날처럼 가슴을 마구 동당거리게 만들어 한참을 넋을 빼고 쳐다보다가, 실수로 손가락에 차인 돌멩이 하나가 큰 파장을 만들며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헉…’

돌멩이 소리에 놀라 살짝 움츠러든 어깨로 동그랗게 뜬 눈으로 흘긋 위를 올려다보는데 맙소사, 설화 속에서나 나오던 선녀님인가 싶었다.

“저기, 저… 겁내지 마시고…”

말을 붙이려는 찰나 눈물이 바닷속으로 사라지더니 이내 얼굴마저 자취를 감춰 달아났다. 깊게 깊게 잠수하여 멀리 떨어진 큰 바위 뒤로 포르르 달아난 여인은 상체는 인간이었고 하체엔 다리 대신에 큰 지느러미가 달려 있었다. 처음 보는 괴이한 모습이었음에도 물속에서 하늘하늘 움직이는 옷자락이나 짙은 바다 빛에 녹아들 듯 우아하게 헤엄치는 남색 빛 꼬리가 모든 걸 한 순간에 잊게 하였다. 건들면 터질 듯 탐스러운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것처럼.

“잠깐만요 저기, 잠시만! 가지 마십시오!”

점차 멀어져 가는 소저를 붙잡으려 급히 절벽을 돌아나가다가 발을 헛디뎌 바닷속으로 빠져 가라앉으면서도 펄럭거리던 도포 자락이 무겁게 물을 먹어 온몸을 휘감으며 바닥으로 끌어내려져 갈 때도 전혀 현실 같지가 않아, 그저 수면 위로 반짝거리며 흘러드는 햇빛을 바라보고만 있었지 무언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멀리서부터 다시 되돌아온 소녀가 자신의 팔을 잡고 물 위로 끌어 올릴 때서야 비로소 현실이구나 하고 깨달았을 뿐이었다.

손끝으로 부드럽게 느껴지는 소녀의 작은 손이, 작은 온기가 따스했다.

“콜록, 컥, 콜록”

한참을 정신없이 기침을 하고 난 후에야 퍼뜩 옆에 있을 소녀 생각이 나 돌아보았더니 조금 떨어진 곳의 바위를 붙잡고 서 있었다.

잠시간 그렇게 바라보다 대뜸 말부터 내뱉었다.

“소저는 어디에서 오셨소?”

딱히 별다른 말은 아니었지만, 그저 어떻게든 말이라도 붙여 인연을 이어나가고 싶은 마음에 되는 대로 입에 붙는 대로 주절거렸다.

나이는 어떻게 되는지, 이름은 무엇인지, 어디서 왔는지.

수많은 질문에도 불구하고 그저 경계심 가득한 눈초리로 지켜만 보는 소녀의 얼굴에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었다

"제 목숨을 구해 주셨으니 무엇 하나라도 제가 보답해 드리고 싶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혹여 도움이 필요하신 일이라도 있으신지요. 그 무엇이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 도와 드리겠습니다.”

숨이 헐떡이고 흠뻑 젖은 몸에서 물이 흘러내려 눈가로 흘러들어 가는 와중에도 진지하게 물었다. 반쯤은 포기한 상태에서, 당신이 단 한마디라도 해 주기를 바라면서. 내가 그대를 도울 수 있는 일이라도 있어 이 만남이 오래도록 이어지길 빌었다.

‘하긴, 바다에서 사는 이가 도움이 필요할 일이 뭐가 있…’

씁쓸하게 내밀었던 손을 거둬들이던 도중에,

“저…”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오는 그녀가 하는 말들은 기가 찬 이야기들뿐이었다. 저는 어디서 살았었고 아버지의 존함과 직함부터 어머니가 저를 팔아 바닷속으로 떠밀려 들어가 몇 년간 애타게 조국으로 돌아올 방도를 찾아 헤매었다는 것까지. 단 한 가지의 사연마저 안타깝지 아니한 것이 없었고 서글프지 아니한 것이 없었다.

구구절절 이야기를 늘어놓다 보니 어느새 저녁이었다. 말간 얼굴로 드리우는 노을을 마지막으로 다음 날의 만남을 기약하고 돌아섰다. 동구 밖에서부터 길게 늘어지는 저녁 그림자를 밟으며 돌아오는데 문득 물에 쫄딱 젖은 자신의 모양새가 떠올랐다.

물에 잔뜩 젖어 옷가지도 머리카락도 다 달라붙어 얼마나 우스웠을까. 그 와중에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 꽤 우스운 작태였음이 분명했다. 얼굴에 훈김이 오르며 피가 몰리는 게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점차 빨라지며 종래에는 마치 달음박질을 하는 것처럼 내달리기 시작했다. 분명 선비의 몸가짐에 맞지 아니한 것은 알지만 그러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잔뜩 붉어진 얼굴을 자꾸만 누군가 손가락질하며 조롱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드디어 찾아온 봄이었다.

 

집으로 돌아갔던 그 날 저녁상을 물리자마자 형님께 편지를 써 사람 하나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그리고 한양까지 오가려면 시일이 오래 걸릴 것이라는 이유로 매일같이 바닷가로 나가 소녀와 시간을 보내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날수록 벚꽃 꽃잎 같았던 연정이 발갛게 익어 모란 꽃잎이 되고 동백꽃이 되어갔다. 이루어질 수 없는 연정이라 한들 어쩌리. 이미 시작한 마음인 것을.

 

*

 

얼결에 시작된 인연은 거진 여섯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이에 꾸준히 만나오던 남자하곤 꽤나 친해져서 다정하게 이름도 부르고 가끔씩 오라버니, 누이 하고 부르는 사이가 되었다.

그저 그 날도 어김없이 바다를 마음껏 누리다 점심때가 지나면 뭍으로 돌아가 멀찍이 숨어 선비님을 기다리고, 만나고, 연정을 나누고. 그렇게 끝날 하루가 되었을 터였다.

행복했던 일상은 과거를 답습하듯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선비님이 오지 않았다. 오지 않는 그 사람을 찾아 조금씩 조금씩 멀리 나서다 보니 해변가였다. 언제나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니 절대 근처에 가면 안 된다던. 그 해변에서 멀찍이 떨어진 바위 뒤에 숨어서 선비님이 오시나 안 오시나 힐끗 힐끗 쳐다보는 와중에 저 멀리서부터 큰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몸을 쭉 빼고 점점 가까워오는 무리들을 바라보는데, 그 사이에 선비님이 끼여 오도가도 못하고 곤혹스러워 하는 듯 보이더니 이내 해변가 끝까지 몰리더니 이내 밀쳐졌다.

모랫바닥에 엉덩이를 찧은 선비님은 그렇게 몇 번을 더 밀쳐지더니 급기야 바다 속으로 천천히 밀리기 시작했다. 허리까지 잠긴 상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선비님은 무언가 열심히 항변하는 듯 했고, 사람들은 여전히 소리를 질렀다.

“그러니까, 그 인어는 도대체 어디다 숨겨두었느냐는 말이야!”

“도대체 무슨 말씀들을 하시는지 모르겠소!”

이게, 무슨 말이야?

“바닷가 동굴 속에 지느러미 달린 요괴를 앉혀놓고 지나다니는 상선들을 침몰하게 했다는 신고가 들어왔소!”

“아니, 그 무슨 해괴망측한… 모다 억측이요!”

선비님이, 사람들의 우두머리인 듯한 사람의 입에서 말 한마디 한마디가 떨어질 때 마다 발 밑이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억측이라니, 그럼 내가 거짓을 이야기 한단 소리요? 당신이 매일같이 해변가로 나가는 것을 본 증인들도 있소이다!”

한가로웠던 일상이 또 다시 내 의지와는 상관 없이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눈 앞이 검게 물들었다. 검고 검은 그 세상 안에서 나는 작게 우그러지고 있는 듯 했다.

도대체 왜. 왜 내 일상은.

“난 무고하오! 무고한 이를 이렇게 몰아세울 수 있단 말이오?”

오늘은… 선비님이 내 소원을 들어주실 날이라 하였다. 생사도 모르던 아버님과 오라버니의 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도와주실 수 있는 날이라 하였는데. 어찌하여 오늘 같은 날에.

또 다시 다른 이들의 손에 의해 일상이 무너진다. 또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길을 걷는다. 그렇게 놓아두느니 차라리 내가 내 손으로 무너트리겠어.

“그거야, 잡아다 놓고 보면 알 일 아니겠소? 여봐라! 저 자를 포박하라!”

“잠깐! 잠깐만요!”

“저를 찾으시는 것이 아닙니까. 저를 찾으셨으면 응당 저를 잡아 가셔야지 어찌 무고하신 분을 잡아 가시려 하십니까.”

웅성거리며 놀란 듯 쳐다보는 시선도 탐욕스러운 시선도 놀란 선비님의 시선도 모두 뒤로 제쳐놓고. 굳은 의지로. 어차피 지옥으로 들어서는 것, 머리채 잡혀 끌려들어가느니 내가 내 선택으로 돌아가지 못할 길을 나서리라.

 

*

 

‘이곳으로 끌려온 지가 며칠이더라. 하루, 이틀… 일주일? 이주? 아니, 물고기를 던져준 게 거진 서른 번이었던가… 열흘? 아, 잘 모르겠다…’

흐리멍덩한 정신으로 날을 세었다. 그날 그렇게 끌려들어 오게 된 관아 밑 동공(洞空)은 아주 좁고 습해서 정말 나 하나만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그간 이곳에 갇혀 있으면서 알게 된 것이라고는 출입문이 하나, 환기구가 하나, 그리고 급조한 욕조 하나가 있다는 것뿐. 그리고 그 안에 내가 있다.

식사랍시고 매일 가져다주는 것은 이미 죽은 생선과 조개뿐이었고 신선한 것을 먹어 본 기억이 없다. 갑갑한 동공 안의 공기는 불과 며칠 전의 일도 아주 먼 과거를 회상하는 것 마냥 아련하게 만들었다.

창이 없으니 날을 구분하지 못했고 크지 않은 환기 구멍은 선선한 바람 한줄기 배달하지 못해 언제나 갑갑했으며 첫날부터 갈아주지 않았던 물은 점점 썩어가고만 있었다. 오랜 시간 물에 닿지 못한 비늘이 일어나 아프고 예민해지기 시작했고, 가끔가다 들어오는 사내들은 생 비늘을 뽑고 살을 잘라내 들고 나갔다. 잘 뽑히지도 않는 단단한 비늘을 뽑겠다고 잡고 뜯고 비틀어 대느라 살과 함께 뭉텅이로 빠져나가는 일도 적지 않았다. 울며불며 아프다 소리쳐도 크게 발버둥 쳐도 바뀌는 건 없었다.

초록빛으로 썩어가는 물속에 방치된 상처는 벌건 속살을 내보이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누렇게 곪아서 썩어갔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자 더는 살기 위해 먹었던 물고기들도 먹기 싫었고 발버둥 칠 의욕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편하게 누워 있을지 고민했고 어떻게 하면 아프지 않을까 했다.

현실을 잊기 위해 회상하는 과거는 고통스러웠다. 하루를 생각하고 되살릴수록 밝은 빛이, 맑은 하늘이, 시원한 공기가 그리웠고 무료하다 생각했던 일상이 간절해졌다. 하루하루가 후회와 우울뿐이다.

‘나는 들판에서 자라는 잡초인 줄 알았지. 그래서 내가 선택한 지옥은 잘 견딜 수 있으리라 자만했었는데. 어리석은… 내가 화원에서 자란 꽃 일 줄 상상도 못 하고.’

더러운 물속에 거꾸로 처박혀 천천히 죽음을 맞이하는 것 이외에는 더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문득 놓쳐버린 사람들이 떠올랐다. 다정한 아버지, 오라버니, 연심을 품었던 선비님.

‘모두 잘 지내고 계십니까. 저는… 아주, 잘. 지냅니다.’

속으로나마 거짓으로 안부를 묻는다. 나는 괜찮아요. 괜찮아요. 자기 위안을 하며 말을 건넨다.

‘그런데 어찌해야 합니까. 아버님. 오라버니.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선비님. 전 과연 옳은 선택을 한 건가요?’

답답한 숨도 마음도 어찌하지 못하고 간절한 마음도 어찌하지 못한 채로. 아직 피지도 못해 연분홍빛 꽃봉오리로만 남은 제 맘도 그대로 이곳에 두고서. 서글픈 마음에 눈을 감았다. 어디선가 맑은 파도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천천히 몰려와 쓸어가듯 크게 들렸다 작게 사라지는… 담담한 숨을 몰아쉬었다.

시나브로 어둠이 찾아들었지만, 여느 때와 다르게 조용하고, 편안하고, 따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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