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을 통해 눈꺼풀에 닿는 햇빛에 눈을 떴다. 평소와는 다른 천장에 의문을 가졌다가 이내 납득한다. 그래, 여긴 내 방이 아니지. 이불 속에서 몸을 웅크리며 머리맡을 손으로 휘젓는다. 이내 달칵 소리를 내며 잡히는 휴대폰을 이불안으로 끌어당긴다. 이불 아래 어둠 속에서 휴대폰의 불빛이 선명했다. 빛에 익숙해지지 못한 눈이 아팠다. 오전 7시 4분. 일찍 일어났다. 휴대폰 화면을 끄고는 다시 이불 밖으로 밀어냈다. 알람이 울리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다. 좀 더, 잠을 자두자. 나는 오늘 좋은 날을 보내게 될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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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을 무시하고 잠이 들었었나 보다. 다시 눈을 뜨니 햇빛 대신 태양이 직접 창 너머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을 날아다니는 해파리도 함께. 햇빛을 받아 제 색을 더 선명히 보이는 알록달록한 해파리들. 색색깔 해파리들이 유영하는 모습을 보다가 커튼을 쳤다. 나는 좋은 날을 보내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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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문을 열었다. 정장을 완벽하게 빼입은 물고기가 주둥이를 열었다 닫았다 한다. 뻐끔뻐끔. 어딘가에서 비린내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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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고 왔던 카트를 밀어 방안으로 들어온 물고기가 접혀진 테이블을 펴고 음식을 올려놓는다. 고소한 내음이 나는 빵, 신선한 과일들, 그리고 계란과 베이컨. 생선류를 시키지 않은 게 다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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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세팅이 끝났는지. 물고기의 눈이 나를 본다.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얼마간을 쥐여주니 꾸벅 고개를 숙인 물고기가 방을 나섰다. 물고기가 간 뒤 한 상 가득 차려진 음식들을 바라봤다. 고소한 내음 사이로 과일들이 춤췄다. 사과와 오렌지가 손잡고 탱고를 추는 모습은 꽤나 전위적이었다. 예술에 대해선 기초 지식밖에 없는 내가 봐도 그랬다. 흥겹게 춤을 추는 사과를 집어 들어 입에 넣었다. 오렌지는 파트너가 사라진 게 슬펐던지 털썩 주저앉았다.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오렌지도 마저 입에 넣을까 했더니 발딱 일어나서 포도와 왈츠를 추길래 관뒀다.
나이프와 포크를 들어 베이컨을 잘랐다. 한 입 크기가 된 베이컨들이 바르작바르작 거리는 게 보였지만. 내 알반가. 그중 하나를 포크로 찍어 입가로 가져다 대니 더 크게 들썩인다. 날 먹을 거야? 날? 왜? 왜 나야? 왜왜왜왜? 다른 베이컨도 많은데 왜 나야? 먹을 거야? 먹을 거야 먹을 거야 먹을 거야? 거 참. 이상한 베이컨이네. 이빨 사이로 연한 고기가 씹히는 느낌과 함께 소음이 멈췄다. 포크를 내려 다른 베이컨을 찍으려 하는데 또 소음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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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컨이 들썩이며 말을 건넨다. 그래. 저 베이컨은 정상인데. 아까 그 베이컨은 좀 이상했어. 왜 사람 말을 하지? 포크로 내게 말을 건넨 베이컨을 찍었다. 소음이 다시 사라졌다. 나는 좋은 날을 보내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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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봤다. 가득 먹은 아침 겸 점심이 퉁퉁 불어서 뱃속을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목구멍까지 치솟았다가 다시 저 위장 아래로 처박혔다가, 식도 중간에서 턴 앤 루프. 앙 투 투아. 보는 사람도 없는데 뭘 그렇게 예술적이고 그래. 속에서 불어터진 음식이 여기저기를 휘젓고 다니는 동안, 갉작갉작, 침대보에서 소리가 들린다. 고개만 돌려 바라보니 웬 쥐가 침대보로 이갈이를 한다. 새하얀 게 나름 귀여워서 손을 뻗었더니 내 손가락 끝을 물고는 팔을 타고 가슴께로 올라온다. 손가락 끝이 아려오는 게 느껴졌지만 참을만했다. 그것보다도 난 지금 저 흰쥐가 더 궁금했으니까. 안녕 작은 쥐야, 네 이름이 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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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릴 리 없는 소음에 미소 지었다가 쥐를 향해 손을 뻗은 순간. 꼼지락대던 쥐가 우드득 소리를 내며 재조합되기 시작한다. 커지고, 부러졌다가,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우드득우드득, 새하얀 쥐, 아니 이제 새하얀 표범은 시뻘겋게 불이 당겨진 눈으로 나를 내려다본다. 커다란 앞발에 가슴께가 짓눌리고, 숨이 턱턱 막힌다. 이건 좀 곤란해. 이빨을 드러낸 표범이 목덜미에 가까이 다가온 순간. 나는 뱀을 토했다. 봐봐, 곤란하다니까. 튀어나온 뱀은 표범보다 훨씬 커서, 칭칭 표범을 감아 목을 졸라버린다. 한참을 그렇게 엎치락뒤치락 싸우던 짐승들의 승자는 뱀이었다. 그리고 커다란 표범도, 뱀도. 휘젓는 손에 사라진다. 나는 좋은 날을 보내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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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하루 종일 방에만 있을까 했는데... 오늘은 좋은 하루를 보낼 거니까. 카드키를 찍고 문을 나섰다. 복도를 가로질러 엘리베이터 앞에 선다. 1, 2, 3, 차례로 올라가는 숫자들을 바라본다. 11, 12, 13. 딩동. 부드럽게 열리는 문안으로 몸을 집어넣는다. 내려갑니다. 이상하기도 하지. 기계가 사람 말을 하네.
시끌시끌한 로비를 지난다. 신기한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망아지의 손을 잡고 지나가는 말. 신이 나 뛰어가는 강아지를 쫓아 달리는 개. 떼쓰는 송아지를 달래는 수소와 암소. 어미닭을 졸졸 따라서 호텔 문을 나서는 병아리 두 마리. 빙글빙글 회전문을 지나 거리로 나선다.
내 머리쯤의 위치에서 부드럽게 유영해 지나가는 가오리와 그 뒤를 쫓아 지나가는 서투른 간자미. 건물 한 귀퉁이를 차지해 벽면 가득 붙어있는 굼벵이와 매미. 제 어미는 어디 두고 왔는지 저들끼리 삐약 거리기 바쁜 꺼병이. 가오리가 지난 하늘을 따라 지나가는 수십의 노가리들. 거리 한복판에 서있는 덩치 큰 능소니. 얇은 다리로 차 핸들을 비틀며 달려 나가는 잠자리, 뒷자리에 탄 물송치. 한 참의 걸어 도착한 공원에 가득한 짐승들과 소음. 나는 발걸음을 돌렸다.
어디로 갈까요? 인간 말을 하는 잉어. △△ 호텔로 가주세요. 그리고 잉어와 이야기하는 나. 차 문을 닫자 소음이 줄어든다. 잉어가 가슴께의 지느러미를 펄럭이며 라디오를 튼다. 라디오 속에서 들리는 앵무새들의 웃음소리. 다시 소음이 커진다. 돌아가야지, 그리고 나는 좋은 날을 보내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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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을 돌아다니며 식었던 몸을 데우기 위해 이불을 두르며 생각했다. 로비에 맡겨둔 짐과 해놓은 것들, 했던 것들, 해야 할 것들. 창 밖 건물과 도로들에서 새어나는 불빛 사이로, 나비들이 날아다닌다. 수십, 아니 수백 마리가 너울거리며 날아다니는 야경을 보며 나는 웃었다. 이윽고 탁자 위에 올려 두었던 통을 뒤집어 하얀 알갱이들을 쏟아부으며 나는 또 웃었다. 파드득 튀어 오른 하얀 알갱이들은 새하얀 생쥐가 되어 뿔뿔이 흩어진다. 이제 돌아가도록 해. 더는 필요 없거든. 나는, 좋은 날을 보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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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소식입니다.…… 한 호텔에서 불이 나 투숙객 한 명이 숨지고…… “화재가 시작된 13층 객실의 화재경보기에 문제가 있어 화재의 발견이 늦었다”며 “정확한 화재 원인은 계속 조사 중”이라고……]
나는 좋은 날을 보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