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가끔 비극적인 소설을 보면, 남자 주인공의 역할을 너로, 여자 주인공의 역할을 나로 정해 놓아 이야기를 감상하곤 한다. 물론 우리 두 사람의 성별은 이와 같지 않지만, 그렇게 두는 편이 따라가기가 쉽다. 왜냐하면 너는 가끔 수식을 쓰는 남자 같고 또한 반대로 나는 성경을 든 여자 같이 행동하곤 했으므로.
이 비유를 이해하려 할 필요는 없다. 이해할 수 있는 너라면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고, 또 한 번에 받아들이지 못했다면 노력해도 불가능할 것이었다. 사실은 현재진행형으로 연애감정을 겪고 있는 두 사람의 존재만이 모든 이해의 필요충분조건이다. 이건 즉 암호인 셈이다. 이해할 수 없는 너에게는 차라리 말하지 않겠다.
난 며칠 전 영화를 봤다. 하필 내가 이전에 우리 두 사람으로 비유하여 보았던 그 소설의 영화화가 이번에 개봉했다. 감독이 유명한 사람이고, 또 투자가 많이 되었던 영화라 흥행을 점쳐볼 수 있다는 인터넷 기사를 보고서는 진심으로 실망하기도 했다. 가능하면 그 영화를 보는 사람이 최대한 적기를 바랐다. 그래서 언젠가 또 누군가가 그 소설을 보았다고 할 때, 배우에 대한 이야기 없이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흥행과 함께 실패한 소망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그 영화를 보러 갔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차라리 소설보다 영화를 먼저 보았을 수많은 감상자들 사이에 끼어 있고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는 지극히 훌륭했다. 훌륭하다 못해 내가 기껏 우리 두 사람의 얼굴로 상상해놓았던 것은, 극장을 나옴과 동시에 깨끗이 표백이 될 정도였다. 특히 주연을 맡은 여배우의 얼굴은 솔직히 나보다는 훨씬 미인이었다. 고개를 가볍게 기울이며 눈물 흘리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솔직히 내가 네 앞에서 울었던 모습들이 상상되어 부끄러울 정도였다. 나는 저렇게 우아하게 울지 못했고, 소설에서 묘사한 것은 오히려 저 영화 쪽에 가까웠다. 그러니 내가 분한 감탄사만 내뱉으며 그 소설을 깨끗하게 포기한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어차피 네가 그 영화를 보지 않을 거라는 것은 알고 있다. 나는 그 점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그 대신 오늘 밤에는 영화 속 대사를 따라해 볼 생각이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