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ritten by BWABWA
이 시간이 이름 속에 묻히는 게 싫다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있을 때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지 않기로 했다. 잠자리 같은 눈을 한 아이가 지나갔고 멍청이 하나가 졸음을 이겨내고 있을 때마다, 치열함은 사그라졌다. 너를 만나고 돌아오는 밤길이면 늘 그랬다. 어둑한 골목의 끝에는 늘 늙은 개처럼 자괴감이 도사리고 있었다.
치열한 고민을 해본 적도 없으면서 치열한 척 한다는 건 너무나 가증스러운 일이다. 치열한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 또한 그런 류의 일들일 것. 나는 단 한 번도 치열하게 살지 못할 것. 치열한 척 위선 떨고 엄살 부리며 누구보다도 건강하고 멍청하게 살 것. 그 누구도 내 속된 뿌리를 탐하지는 못할 것……. 뿌리라는 말이 너무 싫어서 꾸역꾸역 다른 말을 찾아보다가 결국 다시 돌아오게 된다. 얼마나 관습에 매어있었는지 온몸은 그저 나무 등걸이나 마찬가지다. 누구나 왔다가 떠나가 버린다. 머물러있는 사람은 없었다. 온전한 것은 어둠뿐이었다. 차라리 내가 사는 삶이 내 삶이 아니라 속 빈 줄기의 틈에서 몸을 비벼대는 기생충의 삶이라면 마음이 조금 더 편할까.
어느 시인이 늑골 사이로 첩첩이 어둠이 쌓인다고 했는데* 도통 그 말엔 동의할 수가 없다. 어둠은 첩첩이 쌓이는 것이 아니라 켜켜이 뭉개지는 것이다. 뭉개지고 일그러져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때 즈음에서야 비로소 어둠은 완연히 내 몸이 되는 것이다. 밤은 기워지지 못해 너덜거린 채 천장에서 늙은 얼굴을 내민다. 해골 같은 얼굴을 마주했을 때 무심코 느껴지는 서러움이 있었다. 왜 어둠은 이렇게 돌고 도는 무변(無變)의 레퀴엠을 선보이는 것일까.
퇴색한 별빛이 내 옆에서 소멸하는 이유는 뭘까.** 첨예하게 삶을 관통한 문자의 흔적을 쓸어볼 때면 울고 싶어졌다. 너도 그런 게 문득 궁금해지던 시절이 있지는 않았니. 천 번쯤 눈을 깜빡인다던가, 그래서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열 번쯤 수를 세다가 까무룩 잠들어버리진 않았니. 그런 시절이 있진 않았니. 그럴 때면 그냥 죽어버렸으면 나았을 거라는 생각. 문득 두려워지는 건 너의 부재라거나 사랑받지 못함이 아니라…….
* 윤동주, <또 다른 고향>에서 따옴
** 별이 떨어지면 당신이 있는 공간으로 - 성동혁, <1226456>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