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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새하얀 접시에는 연어 한 토막만이 덩그러니 누워있다. 고개를 숙여 살코기를 응시한다. 연분홍빛 형태 위로 새하얀 빗금이 보인다.

예쁜 나이테지?

그녀가 웃는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접시를 들었다. 눈을 감자 시큼한 레몬향이 코끝에 닿는다.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부딪히는 소리에 눈을 뜬다. 여자는 어느새 제 연어를 잘게 자르고 있다. 나이프가 무른 살을 자르며 단단한 접시에 닿는다. 마른 손목이 앞뒤로 움직인다. 그녀는 제일 붉은 부분을 찍어 입 안으로 넣었다. 씹는 소리도 나지 않는다. 한 입, 또 한입. 나는 한참 그녀를 바라보다 연어를 썰었다. 생각보다 탄성이 느껴진다. 포크로 들자 얼룩진 껍질이 드러났다. 낯선 향을 머금으며, 고기를 삼켰다.

 

1. 차가운 살덩이가 꿈틀거린다. 짓이김을 피하며 필사적으로 움직인다. 침은 입 안을 거침없이 돈다. 어둡고 깊은 구멍 앞에는 높은 언덕이 있다. 작은 고기에게 남은 힘은 얼마인가. 목표하는 곳으로 넘어갈 수 있는가. 지나가는 곳마다 흔적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마침내 세차게 꼬리를 흔들며 고기가 둔덕을 넘는다. 허공을 뜬다.

 

2.

연어는 연어다.

연어는 연어의 부분이다.

연어의 부분은 연어다.

연어가 둔덕을 넘는다.

 

3. 마침내 세차게 꼬리를 흔들며 연어가 둔덕을 넘는다. 한 마리가 넘자 따라 수십 마리가 물살을 거슬러 오른다. 물이 튀는 소리가 요란하다. 짓이기는 손을 피하며 필사적으로 움직인다. 낮은 나레이션의 목소리가 들린다. 낯선 언어다. 연어들 위로 하얀 자막이 새겨진다. 모천회귀. TV화면은 몇 번이고 연어들을 비춘다. 살아남고 죽은 연어들. 흙탕물을 일으키며 입을 벌린 연어들. 강 위에 떠다니는 고기들. 허공을 뜬다.

 

4. 여자는 소파에 웅크린 채다. 등은 전보다 조금 더 굽었다. 그녀는 리모컨을 들고 몇 번이고 영상을 되돌렸다. 고기는 강에서 바다로 간다. 나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간다. 그녀가 웃는다. 시선은 여전히 화면을 향한 채다. 여자는 제 손에 얼굴을 묻는다.

“흙냄새가 나.”

평안한 목소리다. 나는 말없이 옆에 선다. 다시 그녀가 입을 연다.

“짠, 냄새가 나.”

말은 계속해서 바뀐다. 마치 원과 같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둥글게 쌓여만 간다. 문득 나이테를 떠올린다. 나무 속 촘촘히 박힌 선은 나무가 거듭한 시간을 보여준다. 여자는 여전히 제 손을 보고 있다. 뚫어지게 바라본다. 바다 냄새가 나. 강 냄새가 나. 반복은 여전히 이어진다. 나는 그녀를 안아들었다.

 

5. 회귀를 생각한다. 나무로 만든 풍경을 떠올린다. 물고기가 바람을 타고 허공을 헤엄친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다. 물고기에도 나이테가 있다. 뼈를 감싸 둥글게 새겨져간다.

나무의 뼈를 생각한다.

 

6. 연어의 뼈가 욕조 바닥에 가라앉는다. 여자는 다시 몸을 웅크린다. 물속에 얼굴을 묻고는 한참 숨이 없다. 목뼈가 유난히 두드러진다. 물에 손을 담근다. 차갑다. 가을날 강물과 같다. 오래 고인 물에서는 물비린내가 난다. 다시 물을 끼얹을 찰나, 그녀가 고개를 든다. 나는 천천히 여자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차갑고 축축했다. 물과 다를 바가 없다. 입술이 파리하게 물들었음에도 그녀는 웃는다. 오랜 잠에서 깨어나듯, 신선한 눈이다. 여자는 자연스레 입을 벌린다. “어서.” 통을 들어 연어 한 토막을 물속으로 밀어 넣는다. 큰 눈이 더욱 커진다. 바닥에 쌓인 연어 뼈들이 자글거린다. 연어 토막이 짓이겨진다.

연어의 뼈를 생각한다.

 

7.

허공을 헤엄치는 물고기의 뼈는 바람이다.

 

8. 시라고 했다. 여자는 소리 없이 웃는다. 나는 드러난 목과 팔만 여상히 살핀다. 어느 곳이나 뼈만 앙상하다. 약물 냄새가 방 안에 가득하다. 가장 작은 옷도 그녀에게는 한 품이 남는다. 기계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규칙적이고, 일정하다. 가습기에서 옅은 연기가 흘러나온다. 여자가 입을 연다. 뻐끔대는 입보다 조금 늦게 말이 들린다.

“허공을 나는 물고기는 연어야.”

“나는 연어가 되고 있어.”

 

9. 등이 굽는다. 눈이 튀어나온다. 피부가 점차 파리하다. 체온이 낮다. 피부가 무르다. 얼룩이 진다. 물비린내가 난다. 발톱이 없다. 체모가 빠진다. 입을 맞추면 아무런 맛도 나지 않는다.

레몬 향이 난다.

레몬 향이.

 

10. 잠이 든 그녀를 안아든다. 가볍다. 어떤 무게도 느껴지지 않는다. 방으로 들어가 담청색 이불을 든다. 여자를 내려놓자 부드럽게 가라앉는다. 그녀의 숨소리가 가늘다. 나는 여자의 손목을 잡는다. 너무도 차갑다. 제 손에 화상을 입을 것만 같다. 텅 빈 뼈 속에는 무엇이 흐르고 있는가. 가만 이불 위로 몸을 숙인다. 바다의 흙냄새가 난다. 강의 짠 내가 난다. 이불은 점차로 젖어든다. 바다보다 싱겁고 강보다 짜다. 연어는 둔덕을 넘는다. 허공을 뜬다. 알 수 없는 맛을 느끼며, 나는 길게 호흡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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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허공을 헤엄치는 물고기의 뼈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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