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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 K는 수업 시간의 공상을 사랑한다.

여고생이라는 단어가 가진 울림은 제법 설레는 축에 속했지만 그 실상은 상상의 반도 따라가지 못한다. 아침에 등교하여 저녁까지 수업을 듣고, 유일한 낙은 점심식사와 쉬는 시간의 단잠. 지루하기 짝이 없는 무미건조한 텍스트의 나열에서 생기를 잃고 지친 기색이 얼굴에 덕지덕지 발라져있다. 누군가 기대하고 그녀들의 일상을 엿보려 슬쩍 페이지를 열었다가 실망하고 닫아버린다고 해도 다들 관심조차 가지지 않을 것이다.

 

“본문은 글쓴이의 고향 밤하늘에 뜬 별을 소재로…….”

 

교복을 줄이지 않았는데도 어느새 딱 맞게 되어버린 치마를 입고 있는 여고생 K도 다른 사람들과 그다지 차이가 없다. 그녀는 인문 계열을 선택한 학생이었지만 문학 시간을 좋아하지 않았고, 꾸벅 졸고 있는 학생들을 둘러보며 대놓고 따분하다는 표정을 짓지 않기 위해 애썼다. 자신도 졸음이 밀려왔지만 수업시간에 눈을 뜨고 있는 것이 그녀의 마지막 양심이었다.

별이라. 다른 별로 이주하고 싶다. 시험이 없는 곳이었으면 좋겠는데.

 

그녀가 양심을 지키기 위하여 시도한 방법은 다양했다. 흔한 고전 수법인 허벅지 찌르기부터 교과서에 해괴한 낙서를 그리는 것까지 일일이 세기 힘들 정도였는데, 그나마 가장 효과가 있는 것은 영화에서나 존재할법한 공간의 상상이었다. 문학을 좋아하지 않는 주제에 문학을 지탱하는 핵심 개념인 공상을 좋아한다는 것이 어쩐지 아이러니했지만 그것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적어도 학생 신분으로 조는 것보다는 백 배 낫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우주로 가고 싶어. 까맣고 공기 한 줌 없는 그 현실적인 우주 말고, 사진이나 동화책에 나오는 예쁜 우주 말이야.

별이 무수하게 빛나서 빈틈이 겨우 푸르게 보일 정도로 아름다운 공간. 그 중 푹신푹신한 별을 골라 침대 삼아 누워서 자고 싶어.

수업시간을 끝내는 종이 울렸다. 오늘도 K는 훌륭하게 임무를 완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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