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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날 날씨는 유난히도 우중충했다,

 

 어둑어둑한 게 비가 오려나보다. 누군가 그렇게 말했던 것 같기도 하다.

기분까지 음울하게 가라앉게 하기로 작정했는지, 속까지 젖어드는 칙칙함이 사람들의 사이를 촘촘히 메꾸듯 채워갔다.

꼬로록 잠수한것만 같은 기분을 떠안고 평소보다도 빨리 집을 향하던, 그런 날.  

 

 '그것' 을 발견했을 즈음에는 이미 빗방울이 머리 위로 톡톡 떨어지고 있던 중이었다.

황무지처럼 . 까딱해야 돌멩이나 하나 굴러다닐 휑한 공터. 분명 양심없는 누군가가 버려뒀겠지.

마치 쟂빛 속에서 그것 홀로 색을 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지나치려 한 걸음 옮기면, 색도 한 움큼 짙어져갔다.

 

 너무 낡은, 흠집 투성이의 피아노. 그리고 볼품없이 찢어져 너덜거리는 누런 악보 몇 장.   

 

 언제 자신이 그것의 앞에 서 있었는지는 모른다. 분명 자리를 뜨려던 것 같은데. 아무리 애를 써도 우뚝 자리잡은 발은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않는 모양이다. 결국 포기한 듯, 건반에 손을 얹고 말았다.

 

 너덜거리는 악보를 펼친 채, 건반이 여러 개 빠져 비틀거리는 피아노 연주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도롱거리는 특유의 음색이 칙칙한 공중에 울려퍼졌다. 조율되지 않아 엉망인 음색은 생각보다도 더 삐걱거렸을 테다.

화려한 듯 투박한 손놀림에 고운 멜로디를 울려 내다가도, 망가진 건반과 함께 피아노가 비틀거리자

그렇게 바로잡히는 듯 하며 엇나간 노래는 오선지를 빗겨나간 음표처럼 어우러져 이리 튀고 저리 튀었다.

톡톡 떨어질 뿐이었던 빗방울이 어느샌가 소나기가 되어 그 소음같은 음악의 근원지를 세차게도 내리친다. 

 시간의 흐름에도 건반을 잊지 못했던 자신이 만들어낸 곡조의 클라이맥스. 그것은 그 무엇보다도 아슬아슬하고 엉망진창인, 자신 그 자체. 

빗속에서 젖어들어간 악보가 결국 스러진다. 그와 함께 엉터리 음악도 막을 내렸다. 

 

 정말이지 최고의 연주였어. 젖어들은 목소리로 네가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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