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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꽃으로 파묻기 위해서 나는 태어났노라. 그것은 너와 내가 만난 날, 아니 그 이전부터 정해져 있는 사실이리라. 눈이 보슬보슬 내리는 겨울에, 꽃이 비처럼 내리던 봄에 너와 나는 늘 같이 있었다. 나는, 너와 같이 있던 시간에 너무나도 익숙해진 나머지 떨어진 시간에 적응을 못 하고 말았다. 아, 어쩜 좋지. 네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너무나도 불안해서 나는 그만 울고 말았다. 아이처럼 울고, 또 울던 내 모습이 너에겐 어떤 식으로 보였을까. 한심하게 보였을까? 한심해 보여도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난 너를 좋아하기 때문에, 내가 어떤 식으로 보여도 할 말이 없어서 우물쭈물하는 내 모습이 한심하게 보이겠지. 다 알고 있었다. 네가 나를 어떤 식으로 바라보아도 너를 향한 내 마음은 사라지지 않아서, 오히려 더욱더 커지고만 있었다.

 

 “바보 같은 짓 그만해.”

 

 너는, 매번 그런 식으로 말했다. 나에게 상처를 주고 슬프게 만들면 내가 너의 곁을 떠날 수 있다고, 그리 생각하는 걸까? 난 네가 무슨 말을 해도 너의 곁을 떠나지 않아. 너와 함께 오래오래 같이 있는 것이 나의 소망이고 나의 꿈이라고, 늘 너에게 말했지만, 너에겐 내 진심이 전해지지 않은 걸까. 너는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비웃기만 했다. 머릿속이 꽃밭이야? 생각이 없어? 너는 왜 너를 생각하지 않느냐고 타박하겠지. 그런데도 나는 어쩔 수 없다고 계속 말할 뿐이었다.

 

 “바보 같은 짓이 아니야. 너도 알잖아?”

 

 예전에 너는 나에게 이리 말했다. ‘너와 함께 봄눈을 보고 싶어.’ 나는, 너와 봄눈을 보고 싶어서 그 계절이 다가오면 너를 찾아갔다. 하지만 너는, 나를 매몰차게 거절했다. 너와 봄눈을 보고 싶지 않아. 계속, 계속 같이 가자고,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해도 너는 싫다는 말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마치 앵무새처럼. 너에게 거절당한 나는 하염없이 울면서 혼자서 봄눈을 바라보곤 했다. 울다가 지쳐서 눈물도 안 나올 때 즈음이 되면 어느새 하루해가 저물어가는 중이고, 나는 혼자서 아롱아롱 떨어지는 봄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고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면, 눈송이가 내 손으로 떨어지고 또 그 눈송이에 활짝 핀 꽃잎이 떨어졌다. 차가운 봄눈이 내 손에 온기와 마주하여 녹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너도 이리 녹아버릴 것 같아서 나는 그것이 너무나도 서러워서 애써 멈춘 눈물이 다시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지고 너를 찾아가도 늘 있던 그곳에 너는 없었다. 너를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녀도 너는 보이지 않았다.

 

 “또 어디 간 거야…. 날 두고 가지 말아 달라고 했잖아….”

 

 돌아오지 않을 대답을 원하듯 허공에 말을 걸곤 했다.

 

나는 돌아오지 않을 대답이라는 것을 매번 알고 있음에도 어째서 너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인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나는 너의 뒤, 정확히 한 걸음 뒤에서 너를 쫓아가는 내 모습과 그런 나를 가만히 기다려주는 예전의 너. 나는 아직도 환상 속에서 사는 것일까. 환상 속의 너는 나를 보며 웃어주고, 말을 걸어주는데 현실의 너는 나에게 너무나도 모질어서 나는 그것이 못내 서러웠다.

 

 너와 내가 자주 가던 장미정원은 꽃이 만개해서 여전히 아름다움을 과시하고 있었다. 하얀 장미가 가득 피어있는 정원은 들어가자마자 장미향으로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 나는 너와 오늘도 헤어지고, 내일도 헤어지고 결국 매일매일 헤어지고 마는구나. 이것이 우리의 영원한 이별이라면 나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어.

 

 “있지, 보여?”

 

 너의 잔해를 끌어안고, 송이송이 내리는 눈을 바라보았다. 눈과 함께 장미 꽃잎이 흩날리는 것이 보였다. 마치 장미로 이루어진 폭풍 같았다. 나는 내가 끌어안고 있던 너의 잔해를 가만히 땅에 파묻었다. 너의 잔해를 땅에 묻고 나니 눈물이 뚝 뚝 흘러 내려서, 나는 나의 눈물로 이루어진 강과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과 눈송이가 꽃잎에 내리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자리를 떠났다.

 

나는, 너를 놓아주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너를 놓아주고 말았다.

그리고 오늘은 너를 꽃 속에 파묻었다. 내일은 내가 꽃 속에 파묻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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