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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상은 지구에서의 인류의 마지막 기록입니다. 또한 인류 역사에 있어 하나의 종장입니다.”

 

 

치직이는 잡음이 섞인 일렁이는 영상이 찌그러진 TV를 타고 흘러나온다. 수 년간 방치된 먼지가 쌓인 TV는 이제 그 수명을 다해 가는 것인지, 혹은 방송상태가 양호하지 못한 탓인지 보랏빛으로 부옇게 뜬 영상만을 화면에 내어 비추고 있다.

 

영상 속의 양복을 입은 노년의 남성은, 당연하겠지만 그런 것엔 아랑곳않고 오롯이 자신의 할 말만을 내뱉는다. 간간히 끊기고 잡음이 많이 섞인 탓에 전부를 알아듣기는 힘드나, 간간히 송출되는 또렷한 발음의 단어들-인구의 폭발적 증가, 자연재해, 식량 분쟁 그리고 핵전쟁-이 전체 문단의 내용을 얼추 추측할 수 있게 해 준다.

 

남자는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힘에 부치는지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뜸을 들인다. 그러나 그것은 연설의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다음 문장은 더욱 선명하게, 힘주어 읽혔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구의 재건을 포기하였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바입니다.”

 

 

사내는, 담담한 어조로 연설을 잇는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인류가 생존을 포기하였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지구 재건에 들어가던 예산을 인류의 존속을 위해 돌릴 수 있게 됨으로써 우리 인류의 미래 전망을 한층 더 밝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위한 프로젝트가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치고 발족...”

 

 

치직, 툭.

 

영상은 거기에서 끊어졌다. TV는 이제 회색의 화면과 치직이는 잡음만을 내보낼 뿐 어떠한 방송신호도 송출하지 못하였다.

 

2305년, 지구에 남은 인류 문명의 마지막 이기가 그 수명을 다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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