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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잔인했던 애정의 역사(歷史)와, 텅 빈 역사(驛舍)에서 처음 마주쳤던 눈길을 기억했다. 전철이 내는 소음이 귀를 덮어 머리를 지배하기까지, 그는 그렇게 나에게 스며들었고 떠나가는 것 또한 강렬하게 머물렀다. 마침내 전철은 조심스럽게 빛을 내주었다. 막 바로 태어나 눈을 뜨면 처음 본 것이 평생의 흉터로 각인되듯, 내가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은 강렬한 환상과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내 앞에 서 있는 빛이었다. 일순 공기가 정지한 듯, 전철을 움직이게 하는 모든 메커니즘이 고장난 듯, 나의 사고회로가 끊어진 듯, 모든 것이 멈추었고 오작동하며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분명한 것은 오직 내 앞에 얄밉게 웃으며 서 있는 환상뿐이었다. 그는 홀로 전철 밖에 있는 사람처럼 바람을 맞고 있었다. 그의 머리카락이 팔랑거리며 소용돌이를 일으킨 것으로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단지 그가 바람에 휩쓸려가지 않는 것은, 그 자신이 발 디딜 공간이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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