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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하얀 땅이었다.
바닥은 물론이요 공간을 메우는 장식물과 높게 세워진 기둥 모두가 흰색으로 점철된 곳에서 펄럭이는 붉은 치맛자락은 무척 도드라져, 누군가가 본다면 나지막이 감탄사를 내뱉었을 것이 분명한 장관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는 혼자다. 따라서 그 누구도 그녀를 향해 박수쳐주지 못했지만, 다행히도 그녀의 관심사는 아니었다.
그녀가 주저앉아 내려다본 아래에는 안개꽃보다도 작은 꽃들이 점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어느 것은 검고, 어느 것은 붉고, 어느 것은 푸르러, 작은 점들이 한데 모여 나타내는 모양새는 물감을 마음대로 흩뿌린 캔버스와 같았다. 하지만 잠시 후면 캔버스에서 수 놓인 밤하늘로 변해버릴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아름다운 광경을 더욱 가까이에서 보고자 하는 것은 마땅한 욕구다. 따라서 그녀는, 아주 당연하게도, 제가 서 있던 땅에서 뛰어내렸다.
그녀를 쫓아 바스러지듯 흩날리는 천 조각은 피처럼 붉다. 호수에 떨어뜨린 잉크가 퍼져나가듯 치마폭이 점점이 흐드러지며 서서히 검게 물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제가 두른 옷의 변화에 괘념치 않는다. 애당초 의복은 그녀에게 부차적인 형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제법 짧은 시간이 지나고,
이윽고 그녀는 지상에 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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