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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仙)

호수 가까이로 다가갈수록 물에 모래가 쓸리는 거친 소리가 그의 귓전을 때렸다. 하얀 버선이 점점 젖어갔다. 마침내 물이 그의 발끝을 적실 정도로 가까워지자, 그는 잠시 멈춰 섰다. 투명한 밤하늘과, 붉은색으로 물든 돌다리, 노란 등으로 빛나는 도시가 물에 비쳐 나왔다. 그는 물그림자를 잡기 위해 손을 뻗었으나, 슬프게도 무엇 하나 그의 손끝에 걸리지 않았다.

 

그는 잠시 멈춰 침을 삼키고는 천천히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검은 옷자락이 그의 몸을 휘감고는, 밤하늘 속으로 섞여들었다. 그 바람에 그의 얇은 팔과, 하얀 얼굴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그가 다시 호수 중앙을 향해 한 걸음을 떼자 물이 일렁이며 그림자들이 일그러졌다. 그 속에서 그는 제 누이의 웃음소리를 들은 것만 같아 빠르게 물을 헤치고 나아갔다. 하지만 그가 앞으로 나아가면 갈수록 속세의 그림자들은 점점 그의 손가락에서 멀어져만 갔다.

 

형형색색의 불꽃이 까만 하늘을 수놓았다. 속인들의 웃음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물속에 비친 붉은 색 불꽃이, 그 속에 비치는 누이의 하얀 머리타래가 잡힐 듯, 안 잡힐 듯, 애간장을 태우며 그를 지나쳤다. 그는 다시 하얀 자취를 쫓으려고 했으나, 젖은 옷자락이 발을 휘감아 버리는 바람에 바닥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깊은 물속으로 꼬꾸라지고 말았다.

 

밑바닥이 흐려졌다. 달그림자가 일렁였다. 검은 물보라가 일었다. 물방울이 공중에 하얗게 흩어졌다. 파르란 꽃잎이 물 위를 휘저었다. 그가 한 모금 숨을 위해 발버둥 칠 때마다, 색채들이 난잡하게 엉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그가 움직이기를 포기할 때 즈음 저 멀리서 보라색 꽃으로 장식된 작은 꽃가마가 보였다. 그의 누이가 속세로 돈을 벌러 떠날 적에 타고 갔던 가마였다. 그는 누이를 목청 높여 불렸다. 그러나 그 외침은 가마꾼들이 읊조리는 곡조에 파묻혀 어디에도 전해지지 않았다. 그는 행렬을 뒤따라가기 위해 물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오히려 그의 몸은 점점 수면 위로 떠올랐다.

 

물에 벗어나자 검은 머리칼을 타고 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밤공기가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다. 그는 자신의 팔로 몸을 감싸 안고는 다시 호수를 응시했다. 더 이상 속세도, 누이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가 떠나온 절의 형체만 달빛을 받아 하얗게 넘실대고 있을 뿐이었다. 스님들의 독경소리가 쓸쓸하게 울려 퍼졌다.

 

눈앞이 흐려지더니, 뜨거운 액체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제야, 누이가 속세보다도 더 머나먼 곳을 향해 떠나갔음을 깨달은 탓이었다. 몸이 떨렸다. 바람에 연등이 흔들렸다. 핏기 없는 손등이 빨갛게 얼어갔다. 기침이 터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마침내 그는 일어나 자신이 왔던 그 길을 되짚어 절로 향했다. 하지만 완벽한 신선도, 속인도 되지 못하는 그의 미련을 대변하듯, 검은 옷자락이 길게 끌렸다.

 

다시 한 번 꽃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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