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이불 속에서 잠들었던 몸이 점점 지하 깊숙이 가라앉는 거 같았다. 눈을 뜨려고 해도 몸을 움직이려고 해도 전혀 소용없었다. 그저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순간 깊숙이 가라앉아 있던 몸이 순간적으로 붕 뜨는 기분과 함께 잠에서 깼다.
W.타쏘
만나면 안 되는 사이-
‘여긴 대체 어디야?’
눈을 뜨자 보이는 건 한 줄기의 빛조차 없는 깜깜한 어둠이었다. 너무 어두웠기에 두 눈을 깜박였지만, 자신이 눈을 감고 있는 건지 아니면 아직도 눈을 감고 있는 건지 전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거기에 아무런 소리조차 들리지 않아 적막하기까지 한 어둠이 무서웠고 이 어둠에 금방이라도 집어삼켜질 거 같은 느낌도 들었다.
무서워서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걸어가고 있는 방향이 앞인지 뒤인지 몰랐지만, 가만히 있는 것보단 덜 무서울 거 같아 무작정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다고 생각한 순간, 앞쪽에 자그마한 빛이 보였다.
‘저곳이 출구구나, 이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겠구나.’
빛을 보자 자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고 자연히 발걸음이 빨라졌다. 천천히 걸었던 발걸음은 어느새 거의 뛰다시피 움직이고 있었고, 앞으로 나아가자 작았던 빛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고 빛 속에 누군가 서 있었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 정도로 보이는 형체였다. 형체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흐릿했던 형체의 윤곽이 점점 또렷해졌다. 그리고 형체가 완벽하게 눈에 익혀지자 제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다. 빛 속에 서 있던 것은 자신과 꼭 닮은 사람이었다. 외형이 너무 닮아 제삼자가 본다면 쌍둥이 아니 도플갱어로 착각할 수 있을 정도였다.
“넌…누구야?”
한참을 달렸기에 목이 바싹 탔고 겨우 입 밖으로 나온 목소리는 갈라졌다.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눈앞에 있는 상대를 인식하자마자 몸이 본능적으로 경계하고 있었다. 손대는 것은 물론 더 이상 다가가는 것조차 거부하기 시작했다.
도망가야 된다, 벗어나야 된다.
이 장소에서 그녀에게서-
머릿속 빨간불이 계속해서 위험신호를 보냈지만, 자신과 꼭 닮은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몸이 마비에 걸린 거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그저 바들바들 떨리기만 할뿐이었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바라보다 천천히 다가왔다.
뚜벅뚜벅-
그녀가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발소리가 공간 전체를 울리는 듯 크게 들려왔고, 이마에선 식은땀이 한 방울 볼을 타고 흘렀다.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그녀는 눈 꼬리는 접으며 방긋 웃었다.
“드디어 만났다.”
내가 사랑하고 증오하는 나의 반신-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내 몸을 두 팔을 벌려 안아주자, 그녀의 몸에서 맡아본 적 없는 향이 코끝을 맴돌았다. 무슨 향인지 전혀 몰랐지만 자신을 안은 그녀 뒤쪽에 펼쳐진 빛 아래 붉게 물든 길이 시야 가득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에게 나는 향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 순간,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그녀의 목소리 외 또 하나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거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