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문 틈새로 노란 불빛이 미끄러졌다. 불빛은 얼마 가지 못해 마루를 뒤덮은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이따금씩 문턱을 넘어 두런두런 오가는 이야기가 들렸다. 그는 제 숨소리를 한껏 죽였다. 쇳소리가 뒤섞인 목소리, 걸걸한 목소리, 탁한 목소리…. 각기 다른 목소리들이 뒤섞여 점점 낮게 가라앉았다.
색다를 것 없는 대화였다. 전후의 이야기를 어렵잖게 유추할 수 있을 만큼 뻔한 대화였으나, 그는 숨을 한껏 죽인 채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문지방 너머의 목소리가 점점 불분명해진다. 그는 이 비슷한 이야기를 수없이 많이 들었다. 제가, 혹은 조직의 누군가가 관리하는 풍속점 여자가 제 처지를 비관해서 죽으려 들거나, 죽거나 하는 이야기는 신파로 운운하기에도 궁색할 만큼 흔한 이야기였다. 동시에 풍속점 부속품의 삶을 받아들이는 이들 역시 수없이 많았다. 그는 이 별 다를 것 없는 이야기를 되새김질했다. 시시껄렁한 심야의 라디오 따위를 주의를 기울여 듣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는 일이었다. 그들의 대화를 그는 표상으로 흘려보냈다. 말소리는 그의 껍데기 위를 지나쳤다. 신물 나는 일이었다. 제 주제에 그들이 혐오스러워 신물이 나는 것은 아니었다. 넌더리가 날 정도로 익숙한 대화가 목구멍을 쥐어짜는 것뿐이었다. 그들에게 도덕의 잣대를 들이밀어, 선악을 가르기에는, 혹은 조백을 논하기에는 그 역시 별 다를 바 없는 군상이었다. 하릴없이 그런 덩어리에서 수없이 떨어지는 자잘한 부스러기 같은 존재였다. 변변찮은 놈이다. 어둠과 한 데 뒤엉킨 그림자가 발치에서 일렁거렸다. 경계가 불분명한 그림자는 마치 유기체처럼 숨결 속으로 녹아들어, 그의 내부, 폐부에 괴는 듯했다. 내뱉는 숨에는 욕지기가 뒤엉켰다. 그는 꾸역꾸역 밀려나오는 신물을 목구멍 너머로 우겨넣었다. 불쾌할 것은 없었다. 오물이 더덕더덕 눌어붙은 신발창을 핥은 적도 수두룩했다.
술집 년 자식새끼 씨는 누구 씨인지 알 도리가 없다. 하릴없는 일이었다. 그가 씨 모를 남자의 자식으로, 다만 목매달아 죽은 창부의 자식일 뿐인 것처럼.
이게 다 네 아비 때문이다. 제 목하나 가누지 못하던 어린 동생은 똥오줌이 뒤섞인 요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여자는 인형에 젖을 물렸다. 어린 동생은 젖을 찾아 빽빽 우는 대신, 비쩍 마른 입술을 붕어마냥 뻐끔거리며, 이따금씩 눈을 껌뻑거렸다. 인형에 젖을 물리고, 그녀는 붉은 립스틱을 발랐다. 그 뒤에 그녀의 젖을 무는 것은 낯선 사내들이었다. 그는 오물이 뒤섞인 요를 치웠다. 짓무른 피부에서는 누런 고름이 흘렀다. 제 손바닥 둘을 모은 것보다도 작은 등을 뒤덮은 종기가 아무는 일은 없었다. 울음소리, 웃음소리, 씩씩거리는 숨소리, 죽는 듯 흐르는 신음, 그 온갖 것들 속에서 그는 쌕쌕 울음도 채 못 터뜨리고 힘겹게 숨을 몰아쉬는 어린 동생의 등을 닦았다. 줄곧 숨을 죽였다. 어미는 그를 제 앞에 앉히고, 머리를 빗겼다. 어미의 품에 인형은 없었다. 제 목하나 가누지 못하는 것은 그저 오물이 덕지덕지 들러붙은 요 속에 파묻혀 있었다. 네 아비 때문이야. 네 아비가 방탕해서 그래. 빗살에 뒤엉킨 머리카락은 뚝뚝 끊어졌다. 그는 어미를 제지하는 대신 비명을 삼켰다. 아파, 아파. 목구멍 언저리를 맴도는 말도 안으로 삼켰다. 머리에는 구멍이 숭숭 났다. 어미는 포주의 손에 방으로 끌려들어갔다. 그녀는 꽥꽥 비명을 내질렀다. 붉은 립스틱이 엉망으로 번졌다. 얻어맞는 소리가 났고, 그는 요를 들췄다. 썩은 내가 났다. 비쩍 메마른 입술은 더는 뻐끔거리지 않았다. 쉰 울음소리는 그쳤다. 다만 그 작은 등의 종기는 여전했다. 등을 뒤덮은 고름을 닦아내었다. 수건으로 몇 번이고 고름을 닦아내었다. 좀처럼 그칠 줄 모르던 고름이 멈출 쯤, 여자는 비척비척 걸어 나왔다. 어느 남자의 혁대에 그녀는 목을 매달았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낯선 남자의 혁대에 목이 매달렸다. 바닥으로 오물이 쏟아졌다.
그는 마른 입술을 몇 번 뻐끔거렸다.
머리통이 동그랬다. 떡이 진 머리카락이 동그란 머리통에 눌러 붙은 채였다. 고약한 냄새가 났다. 기름 냄새, 땀내, 썩어갈 때면 으레 나고는 하는 썩은 냄새 따위의 것들이 뒤엉켰다. 지푸라기가 썩는 냄새기도 했고, 볕이 들지 않는 골방이면 으레 나는 곰팡이와 먼지가 뒤엉킨 냄새이기도 했다. 온갖 불쾌한 냄새들이 뒤엉켜 기묘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오물 위를 기어 다니던 어린 몸뚱어리. 제 발치에 한 번도 기어오지 못하던 것. 어미의 젖을 인형에게 빼앗기고, 낯선 사내들에게 빼앗긴 어린 것. 그는 무릎을 꿇었다. 마른 꽃냄새가 기어올라 숨을 죄었다. 뱀처럼 모가지에 똬리 튼 냄새가 가슴팍을 물어뜯을 마냥 파고들었으나, 그는 이브가 아니라, 물어뜯길 젖가슴은 없었다.
어린 아이였다. 나무 껍질마냥 마른 입술은 몇 번을 뻐끔거렸으나 숨소리 하나 제대로 토해내질 않았다. 입술 껍질이 들썩거리지 않았다면 그는 이것이 어미의 젖을 물던 인형이라고 여겼을 터다. 그는 잠자코 이것과 눈을 마주했다. 과연 그것이 마주함인지 그는 확신할 수 없었다. 검게 죽은 눈가 언저리를, 그림자가 드리운 누렇게 뜬 흰 눈자 위 따위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과연 마주한다고 지칭할 수 있는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제 시선은 눈동자 언저리, 동그란 안구의 표면 위를 부유하고 있는 것뿐일지도 모르며, 그 너머 망막의 어름에도 닿지 못한 채, 하나의 신호도 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어린 것의 생은 얼마나 이어질까. 흰 몸뚱어리, 흰 눈물을 뚝뚝 흘리며 제 몸을 불사르는 초보다도 연약한 것은 얼마나 그 흐리고 옅은 숨을 이어갈 것인가.
혁대가 끊어지고, 고깃덩이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오물 위로 쏟아진 몸뚱어리는 기괴하게 꺾이고 비틀렸다. 뭉개진 살덩어리들 사이로 뼈가 튀어나왔다. 시퍼렇게 부푼 살갗을 가르고 튀어나온 뼈는 날카롭게 벼려져, 그것이 마치 고깃덩이의 본성인 듯했다. 제 몸뚱어리마저도, 제 피륙마저도 가를 만큼 매섭게 벼려진 날카로움이었다. 바퀴벌레, 송장을 파먹는 귀뚜라미 따위의 썩은 고기를 탐내는 벌레들이 엉겨들었다. 그녀가 살아 숨 쉬는 고깃덩이였을 때에는 낯선 사내들이, 죽은 고깃덩이일 때에는 벌레들이 엉겨드는 것이었다. 낯선 사내와 벌레들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들이었다. 고깃덩이를 좀먹어 그것을 제 양분 삼는다는 점에서 그랬다. 벌레 따위는 큰 고깃덩이니 작은 고깃덩이니 가릴 것 없이 먹어치웠다. 제 어미가 뿌리던 싸구려 향수의 냄새, 탈취제의 나프탈렌 냄새 따위가 희미하게 남은 이불 속으로 고개를 처박았다. 시들어가는 냄새가 밀려들었다.
그는 그 냄새들을 잊을 수 없었다. 그것은 그의 생에 있어서 몇 안 되는 강렬한 감각이었다. 그는 제 어미였던 여자의 냄새들을 추억했다. 그것이 한낱 오물덩이에서, 썩어가는 고깃덩이에서 흔히 풍기는 악취에 불과했다고 할지언정, 그는 그것을 추억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어쩌면 그 냄새들은 다만 냄새가 아니라, 그에게 어떤 의미로 언어화 되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그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끼지도, 사랑이나, 허무나, 생이나, 죽음을 느끼지도 않았으나, 가장 강렬한 감각이었다. 한없이 무의미하기에 한없이 관대할 수밖에 없는, 아무것도 되지 않기에, 다만 무용하기 때문에 허락받는 관용의 세계에서 그것만큼은 관용으로 포괄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 강렬한 냄새. 온갖 것들의 뒤섞인 냄새.
고깃덩이는 기형적인 곡선으로 이어졌다. 이따금씩 날카롭게 비집고 나온 뼈는 곡선의 언어를 뚝 잘라먹었다. 그 절연은 거의 살라먹는 것과도 비슷한 모양새였다. 불길이 어둠을 살라먹는 것 마냥 불연속적이고, 마냥 움직이는 것이 그랬다. 흰 뼈는 들쑥날쑥하게 살갗을 가르고 제 흰 몸체를 자랑했다. 어린 것은 그 고깃덩이의 발치 어름 오물더미 위에 주저앉아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썩은 고기의 냄새와 오물의 냄새, 지푸라기 썩는 냄새 따위가 뒤섞였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서로의 몸을 비비꽜다. 하나의 덩어리가 될 수 없는 것들은 마이나데스나 사티로스마냥 난잡하게 몸을 뒤섞었다.
그는 어린 것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시퍼렇게 부풀고, 뭉개지고, 무너져 오물로 뒤범벅된 몸뚱어리는 어린 것의 얼굴에 얼마나 남아있는가. 그는 이 어린 것이 과연 얼마나 오랫동안 이 냄새들을 기억할지 어림했다. 이 어린 것은 이 혐오스럽도록 선연한 냄새들을 얼마나 오랫동안 의미로서 향유할 것인가. 그는 과연 얼마나 더 이 매캐한 냄새들을 의미로 받아들일 것인가. 메마른 꽃냄새는 불현듯 다가왔다. 풍속 업소의 여자와 몸을 뒤섞을 때든, 오물로 뒤섞인 구둣발을 핥을 때든, 어깨에 힘을 주고 악을 쓸 때든. 그는 그 매캐한 냄새가 숨결에 뒤섞여 흘러나갈 때면 제 사위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잊어버리고, 고깃덩이가 뭉개진 오물 사이로 침전했다.
얼굴은 아우라를 잉태한다. 그것의 종류가 아름다움이든, 혹은 추함이든, 아우라는 유기체처럼 얼굴에 서렸다. 이마, 눈썹, 콧대, 입술, 양 뺨 따위의 곳곳에 아우라는 농담처럼 짙게 괴거나 혹은 흩어지거나 했다. 아우라는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를 흘렀다. 푸른 낯빛은 가볍고, 얼굴 곳곳에 드리운 그늘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는 그 모든 것들 속에서 낯익은 것들을 읽어내기 위해 분투했다. 어린 것의 숨결은 이따금씩 마른 입술껍질을 들추었다. 그 놈 자식새끼면 어쩌려고. 욕창으로 뒤덮인 몸뚱어리의 살결이 문득 어린 것의 얼굴 위로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는 그 익숙한 것의 그림자 속에서 낯선 모양새들을 더듬더듬 읽어내었다. 그러나 그는 그 어린 것에게 말을 붙이기 위해 입술을 달싹거리는 짓은 하지 않았다.
비단 그 어린 것이 귀머거리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무의미, 혹은 소용과 쓸모 따위의 것으로 단순화하기에는 어려운 일이었으나, 동시에 하나의 결로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단조로운 것이었다. 대화는 의미를 창발시키거나, 혹은 거세하거나 했다. 그는 이 어린 것과 어떠한 의미도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그네들이 서로 공유하는 의미는 메마른 꽃냄새를 닮은 악취의 덩어리면 족했다. 그는 그렇게 여겼다. 그네들의 존재는 무가치하기에 한없이 가벼운 것들이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무가치한 소모품은 혹은 소모품조차도 될 수 없는 무의미의 표상은 그것의 가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에서 가볍다. 그네들의 존재는 그랬다. 아무 의미도 지니지 못하기에 관용의 대상이며, 이 관용은 존재를 짓눌렀다. 이 모든 죄악에 있어 너그러이 무시될 수 있는 무가치한 존재들이 어떤 의미를 향유하며, 그네들 사이에 의미의 덩어리를 빚어내겠는가.
그 놈 자식새끼면 어쩌려고. 그는 그들이 몇 번이고 이 어린 것의 처분에 대해 떠들며 이 어린 것의 뿌리에 대해서 떠들었다. 이 어린 것의 씨는 그들의 말대로 그 놈의 것일 수도 있으며, 혹은 어느 알 수 없는 남자의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어린 것의 기원이 가치를 변동시킬 만큼 중한 것인가? 무엇이든 가치가 변하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그들의 논의는 무용하다. 술집 여자의 젖무덤에 얼굴을 파묻던 이의 씨일 뿐이다. 술집 계집의 배를 빌어 태어난 이는 제 씨를 모른다. 그 씨의 주인이 뉘인지 알아도 모를 뿐이었다. 창부의 자궁은 잃어버린 고리가 된다. 그들은 그 이전의 기원과 그 이후의 씨는 서로 분리된 것들이었다. 제 씨가 어디에서 왔는지 짐작하더라도 그네들은 결국 어느 날 돌연 생겨난 무가치함의 산물이었다. 그가 그렇듯, 그 어린 것 역시 그럴 것이었다. 그 씨의 주인이 그것이 제 씨라 받아들일 리 없으니, 기원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니 그 어린 것의 기원은 처분과는 무관한 문제였다. 그러나 인지와 행위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는 저도 모르게 어린 것의 얼굴에서 기원을 찾았다. 그 놈. 그 씨의 주인. 제가 구두 밑창을 핥고, 고개를 조아려야 하는 사람의 얼굴을 찾았다. 또 제 어린 동생의 얼굴을 긁어내었다. 제 어미 젖 한 번 물어보지 못한 어린 동생의 그림자가 너울거렸다.
젖무덤에 고개를 파묻었다. 살덩이 속으로 고개를 파묻을수록 숨이 막혔다. 늙은 여자의 살 냄새는 독한 구석이 있었다. 무슨 꽃의 냄새인지 짐작할 겨를이 없는 향수 냄새가 시들어가는 여자의 암내와 뒤섞였다. 어미의 젖을 물던 사내들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그는 그네들에 비해 도덕적으로 우위에 설 것도, 깨끗할 것도 없었다. 그는 그 사내들과 구분할 것 없는 놈들이었다. 그는 종종 꿈을 꾸었다.
벌거벗은 채로 사내들은 일렬로 늘어섰다. 그 역시도 그 군중의 하나로 섰다. 축 늘어진 살집들이 출렁거렸다. 일말의 수치감도 없었다. 아름답고 추한 것이 없는, 별반 다를 것 없는 몸들의 향연은 나체가 지니고 있는 은밀함을 거세했다. 일련의 사내들은 개별로 구별될 것 없는 하나의 덩어리였다. 가장 은밀한 부분은 치부가 아니었다. 그 집단의 몸에서는 치부가 거세되었다. 이 덩어리들은 늪지대를 빙빙 돌았다. 원시 부족의 집회 같기도 했으며, 야만 사회의 경배 같기도 했다. 덩어리는 늪지대를 돌며 춤을 추고, 고함을 지르고, 노래를 불렀다. 늪지대를 빙빙 도는 그들에게는 선두도 후미도 없었다. 이 덩어리는 꼬리를 문 뱀과 같았다. 시커먼 늪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채 부패하지 못한 고깃덩어리들이 표면으로 떠올랐다. 흰 살덩어리들이, 아직 형체가 뭉그러지지 않은 젖가슴들이 떠오르자 사내들은 돌연 늪지대로 제 몸을 내던졌다. 오물을 뒤집어쓴 사내들은 흰 살덩어리들을 마구잡이로 물어뜯었다. 그는 그 사내들의 무리 속에서 늪지대로 걸어 들어갔다. 오물은 발치를 지나, 무릎까지 잠겨들었고, 곧 그의 허리를, 이윽고 그의 머리끝까지 잠겨들었다. 입아귀를 가득 메우고 숨을 죄었다. 오물은 꾸역꾸역 밀려들었고, 그는 그것들을 삼켜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꿈에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인종이었다. 사실 그에게는 대부분의 것들이 다만 무의미하기만 한 것들이었다. 그는 그야말로 무의미의 표상이었다. 우스운 이야기였으나, 그는 하나의 기표로서 무의미의 기의 아래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유기체일지도 몰랐다. 무의미를 기호화한다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무가치한 일인가. 그러나 그 우스운 무가치가 그의 단상이었으며, 그의 근본이기도 했다. 이게 모두 네 아비가 방탕해서 그래. 그러나 그는 제 아비를 본 적이 없었다. 다만 그가 알고 있는 것은 제가 그 아비의 씨를 물려받았음이었다. 기원을 알 수 없는 씨였으나, 그것은 분명 제 어미의 목을 조르던 어느 아비인가의 씨였다.
늙은 여자는 그의 얼굴을 이따금 쓰다듬었고, 이따금 그의 뺨을 내려쳤다. 혁대로 그의 목을 죄는 일은 없었으나, 구둣발로 그의 얼굴을 짓밟는 일은 있었다. 가끔 그 늙은 여자는 그에게 알몸으로 그녀 앞에 서있기를, 혹은 엎드리기를, 발치를 기어 다니기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는 그 늙은 여자의 요구에 순응했다. 늙은 여자는 그가 순응할 때면 기꺼워하기도 하였으며, 동시에 혐오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붉은 립스틱을 덧칠한 입술은 쩍 벌려져, 그 안의 누렇게 변색된 치아를 드러냈다는 것이었다. 입술 새로 비집고 웃음소리가 튀어나왔고, 혀를 날름거렸다.
그 놈은 그 늙은 여자의 아들이었다. 그는 제가 늙은 여자의 발치에 알몸으로 엎드린 꼴을 보고는 제게 구둣발을 들이밀었다. 나체로 드러누운 제 어미의 몸뚱어리를 지나친 그는 그에게 밑창을 핥을 것을 요구했다. 이윽고는 제 어미와 뒤섞은 제 몸뚱어리를 내려다보고, 제 얼굴을 걷어찼다. 제 몸뚱어리는 형편없이 나동그라져 그에게 치부를 고스란히 내보였다. 그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짙게 드리운 그림자 속에서 그는 제 어미의 그림자를 떠올렸다. 낯선 남자의 혁대에 목을 매단 여자를 떠올렸고, 온갖 냄새들을 떠올렸다. 제 어미를 끌고 들어간 낯선 남자를 떠올렸다. 젖무덤에 고개를 파묻던 사내들을 떠올렸다. 이게 다 네 방탕한 아비 때문이다. 꽥꽥 내지르는 비명소리가 귓바퀴를 맴돌았다. 그는 갑각의 벌레였다. 썩은 고기 따위에 엉겨드는 벌레들 중 하나. 송장을 파먹는 귀뚜라미 따위의 것이었다.
그는 저를 내려다보던 그 얼굴을 어린 것의 얼굴 위로 덧그렸다. 구둣발로 저를 짓밟던 남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무가치한 일이었다. 마른 꽃냄새가 밀려들었다. 아귀를 벌리자 썩은 오물의 냄새가 밀려들었다. 그들은 덩어리의 일부일 뿐이었다. 나체로 춤추고, 고함을 지르고, 노래하는 사내들 중 하나일 뿐이었으며, 그들은 그 이상의 것이 될 수 없었다. 그들은 그 일련의 집단에서 벗어나는 순간 흩어져버리고야 말 무엇인가였다. 그네들이 지니고 태어난 씨 따위는 아무런 가치도 지니질 않았다. 그는 방탕했다는 제 아비를 떠올렸다. 늪 위에 떠오른 하얀 젖무덤을 떠올렸고, 썩은 오물의 냄새를 떠올렸다. 그네들이 그 선두와 후미가 존재하지 않는 행렬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늪 속으로 헤엄쳐 들어가는 것밖에 없었다. 썩은 오물이 제 숨을 꾸역꾸역 메우고, 죄는 곳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