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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갈지도 모르는데 괜찮아?’

 

 오래되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다. 애인에게 신발을 사주면 오래가지 못한다. 우연히 들었던 미신을 말하며 짓궂게 놀리는 내 말에 남자가 웃는다. 웃었다.

 

‘괜찮아, 하이힐이니까.’

 

  하이힐이면 신고 도망쳐도, 제대로 뛰지 못할테니. 서늘한 손이 하이힐을 신은 내 발을 감싸 안았다. 그러니 도망치려거든 하이힐을 신고 도망쳐. 남자의 목소리가 귓가에 부드럽게 감겨졌다.

 

 잡으러 갈테니까. 부디 내가 잡을 수 있도록.

 

 

“내가 당신이라면.”

 

 추억 속에 헤매이던 나를 깨우는 목소리에 눈을 떴다. 여자의 손이 내 발목을 쓸고 있었다. 놀라서 몸을 작게 떨자 이번에는 여자의 손이 내 발꿈치를 감쌌다. 그건 마치 신발을 대신하려는 것처럼. 괜찮아, 하이힐이니까. 문득 그 말이 떠오르는 건 어째서일까. 마른 침을 삼켰다. 마주하던 여자의 두눈이 가늘게 휘어졌다.

 

“하이힐은 벗어두겠어.”

 

 농밀하게 지어진 미소 위로, 위험한 목소리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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