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런 것이 내 마지막일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왔을 뿐, 그뿐이었다. 그러나 어디서부터가 잘못되었던 것일까. 처음부터, 처음부터 이 일을 되돌아 보기 위해 눈을 감고 이 곳에 오던 것부터 회상해냈다. 내게 주어진 마지막 몇 분을, 적어도 죽게 된 이유 분석에 써야 하지 않겠어.
도심지이더라도 한적한 곳은 얼마든지 있다. 약속 장소는 그런 곳에 세워진 외딴 건물이었다. 한 때는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었겠지만, 어떤 사건으로 인해 폐쇄되었을 것이고, 지금은 그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부식되어가고만 있는 그런 음침한 구조물이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였다. 회색 건물을 위아래로 한 번 훑고, 유리문으로 다가서서는 쇠사슬로 묶인 같은 재질의 손잡이를 잡았다. 시험 삼아 한 번 밀어보자 끼익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뒤로 그대로 쓰러지다가, 바닥에 부딪히는 충격으로 인해 산산조각났다. 참 웃겼다. 이렇게 쉽게 부서져버릴 정도면 이 문은 제 구실을 한 때가 대체 언제였을까. 이 건물은 내 생각보다도 낡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유리조각을 밟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외부보다 더욱 황폐했다. 찢겨진 벽지, 반쯤 무너져내린 천장, 중간중간 밟는 곳이 사라져버린 목재 계단까지. 이런저런 것들을 파악하며 주위를살펴보고 있자,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이야."
"안녕."
간단한 재회의 인사. 그것이 끝이었다.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계단 쪽으로 다가서려 하자, 내 팔목이 그의 손에 잡힌 것이 느껴졌다.
"이거 놔. 아니, 그래. 부른 건 너지. 왜 여기에 불렀는지 설명해줘야겠어."
"그래, 그래. 자, 진정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게."
그는 이 일이 재미있다는 듯이 하하 웃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도 난 네가 좋은 걸, 어쩌지? 아직도 너를 좋아하고 있어."
순간 당혹스러웠다. 저 말이 진심인 건가? 그렇지만, 겨우 저런 말에 넘어갈 수 없었다.
"모두 의미 없는 일이야. 전부 끝나버린 이야기고."
그는 그 말을 듣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 재회의 순간이, 우리의 관계를 깨끗이 해결해줄 열쇠라고 믿었는데. 내가 틀렸었나 봐."
"응, 틀렸어. 그러니 이제 난 가봐도 될까?"
"아직이야. 내 말은, 내 용건은 전부 끝나지 않았어."
아까 잡았던 팔목을 기점으로, 그는 뒤에서 나를 끌어안았다. 그의 손이 가슴에 질척하게 달라붙는 것이 느껴졌다. 징그러운 것, 상대할 가치도 없어.
"이거 놔. 똑같은 말 반복하는 것이 제일 싫어."
"이 순간이라도 행복하고 싶으니까, 그 입 조용히 다물어줘."
짙은 협박조의 말이었다. 그의 말대로 지금을 마지막 순간이라고 믿고, 그의 소원대로 조용히 있었다.
"자아, 고마웠어. 이제 안녕. 재회도, 용건도 끝이야."
포옹을 끝내고, 그는 한 걸음 뒤로 갔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나는 팔목을 털었다. 불쾌한 것에 닿았으니 이렇게라도 털어내야지. 그리고 이왕 이 곳에 온 것, 이 기괴하게 되어버린 건물 구경이나 하다 갈 생각으로 한 발짝 더 앞으로 나갔다. 그랬던 순간에, 총성이 들렸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가슴에 붉은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하얀 셔츠에 붉은색이 피어나고, 피어나고... 꽃의 크기는 점점 커졌다.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저 눈을 크게 뜨고, 어째서라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싫다면, 죽여서라도 갖겠어. 이것이 내 욕심이야. 소원이자."
그가 원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인형 놀이였다. 아니, 정확히는 시체 놀이. 그가 모은 시체의 수는 얼마나 될까? 한 가족을 꾸려 그가 원하는 역을 전부 맡기기에는 충분한 수일까? 눈이 감겨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 암흑이 찾아오며 나는 회상을 시작했던 것이었다. 그는 죽여서라도 갖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믿기지 않았고,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그래서 회상한 건데, 그 외의 별다른 이유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말이 그렇다고 믿더라도 내게 득이 되는 일은 없었다. 이제 정신도 점점 희미해진다. 마지막으로 든 생각은 세 가지였지만,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총은 비겁하다. 한 사람의 목숨을, 내 목숨을 한순간에 빼앗아갔다. 한 정신 나간 시체 성애자이자 사이코패스 때문에,
처음부터 불공평하게 살다가 결국 끝마저 불공평하게 가는구나, 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