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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그렇듯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은 공기다. 그것도 아주 무거운. 짓눌리지 않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될 정도다.

 

 

 바닥은 새까맣다. 감히 그 끝을 짐작조차 할 수 없을 것 같이. 바닥에 부착된 타일이 교차되어 드문드문 보이는 틈새가 아니었다면 꼭 낭떠러지 같았을 그런 바닥이다. 그리고 그런 바닥에서, 분명히 빛이 들어올 만한 구석은 없는데 마치 사고라도 난 듯 바닥에 널브러진 유리 조각들은ㅡ벌써 깨어져버린ㅡ어딘가에서 빛을 받아오는 것처럼 스스로 빛을 발하고 있다. 그리고 그 빛은 직선의 형태를 유지하며 시야 안으로 들어온다.

 까드득, 하고 유리는 밟혀지는데 정작 들려야 할 소리는 묵묵부답이다. 침묵 같은 방 안에서 들리는 거라곤 white noise. 일명 백색 소음이라고 불리는 소리들뿐이다. 이 상황에서 그게 왜 떠올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무게감을 덧칠한다. 위화감이 덧입혀지는 것이다.

 바닥에 닿은 부분이 이내 붉게 번지기 시작한다. 

 아직도 소리는 답이 없다.

 

 

 

 구조는 생각했던 것보다 단순했다. 조금 전 빛이 조금이나마 들어왔던 방과는 달리 방을 나와 완벽한 암전 속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돌아다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 결과로. 이곳은 하나의 큰 방이 아니라 여러 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보통의 가정집 구조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아낸 것은 큰 이득일 것이었다. 미로 속에서 탈출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외워두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손으로 벽을 짚고 계속해서 따라 걷는 것. 여기가 미로는 아니었지만,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어쩌면 여기가 미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지만. 뭔가가 이상하다는 것은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몸이 리셋 되는 기분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정말 그 리셋이라는 말의 어감 그대로. 그리고 그 증거로, 조금 전 여러 개의 방들을 돌아다니며 정신을 잃어버렸을 때가 몇 번 있었다. 정신을 잃는다는 것 자체는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정신을 차리고 깨어나기만 하면 깨어난 그 장소는 처음 눈을 뜬 곳과 ‘같은 방’이라는 게 중요했다. 어디에서든. 무엇으로든. 시간이 얼마나 흘렀든 간에 깨어나기만 하면 그 곳은 같은 곳이었다. 몇 번을 쓰러져 다시 깨어나더라도 몸이 돌아가는 위치는 다를 게 없었다. 

 

 

 으. 갑자기 훅 끼치는 열기에 심장이 쿵쿵대기 시작했다. 제 환상이 빚어낸 현상의 증폭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사람을 골로 가게 하는 뭔가가 있는 건지 여기선 아주 미세한 충격을 받아도 곧잘 정신을 잃곤 했다. 

 열에 심장박동이 빨라지자 눈꺼풀이 자연스레 아래로 끌린다. 아. 여기서 또 쓰러지면 안 될 텐데. 하던 중얼거림은 이미 의식 저편에 묻어둔 지 오래다.

 

 

 공기가 무겁다. 짓눌리지 않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될 정도다.

 발바닥이 붉게 번지기 시작했던 게 조금 전 같은데, 눈을 감기 전 마지막으로 본 것은, 갈대빛을 띄는. 한 강아지의 형상이었다.

 

 

 아. 꿈이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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