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당신을. 내가. 좋아한다고. 그 말을 못 해서.
봄이었다. 추웠고, 시끄러웠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떠드는 아이들 속에서 너는 조용하게 앉아있었다. 그 가벼운 침묵 속에서 나는 네 손을 보았다. 마른 손은 책 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앞문이 열릴 때까지 책은 한 장도 넘어가지 않았다. 너는 무엇을 읽은 걸까. 무엇을 듣고, 무엇을 바라고 있었을까. 제비 뽑기를 했다. 나는 네 짝이 되고 싶었다. 25번. 너와 나 사이에는 두 명의 아이가 있었다. 나는 슬쩍 고개를 빼서 네 뒷모습을 보았다. 까맣고 긴 머리카락이 보였다. 부드럽게 내리는 햇빛이 너를 빛나게 했다. 마음이 조금 일렁였다.
수업이 시작되었다. 분필이 칠판을 지나갔다. 나는 이따금 눈길을 돌려 너를 보았다. 하얀 손이 움직였다. 네 글씨체를 상상해보았다. 둥글게 쓸까, 네모 낳게 쓸까. 아니면 흘려 쓸까. 점심시간이 지나자 비가 오기 시작했다. 우산이 없는 아이, 우산을 자랑하는 아이, 우산을 빌리는 아이. 그 사이에서 너는 지워질 것처럼 앉아있었다. 소리가 너를 파묻었다. 비는 점점 더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네 가방 속이 궁금했다. 우산이 있을까. 어떤 색일까, 무슨 무늬일까. 아니면 없을까.
학교가 끝났다. 비가 오는 학교에 남아있고 싶어 하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아이들은 우르르 교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가방을 메고 고민했다. 이름을 부를까. 말을 걸까. 나는 혼자서 교실을 나왔다. 다음 날 너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