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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오르는 불 속으로 마른 잔가지를 밀어 넣었다. 타닥타닥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잔가지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조금 과하다시피 집어넣었으니 아마 한동안은 쉬이 꺼지지 않을 것이다. 어둠을 집어삼켜가며 붉게 일렁이는 불꽃을, 옹송그려 앉은 채 한참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전신을 짓눌러오는 화기는 따스하다 못해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뜨거웠다. 그럼에도 몸을 뒤로 물리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아, 그저 모르는 척 슬며시 눈을 내리감았다.

 

 

 메마른 잔가지가 되는 상상을 했다. 불이 옮겨붙기가 무섭게 발끝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순식간에 타들어가, 끝내는 시커먼 잿덩어리가 되고 마는 자신을 상상했다. 여태까지 품어온 쓸데없는 기억들도, 감정들도, 전부 불 속에서 남김없이 털어낸 뒤에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산산이 흩어지는 결말을 상상했다. 그러한 죽음도 썩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다물린 입술 새를 가르고 비실비실 웃음이 흘러나왔다.

 

 

 어쩌면, 그것이 제가 가장 바라 마지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치 늪 마냥 발목을 붙든 미련들도. 채 추스르지 못해 결국에는 넘쳐 흘러버린 감정들도. 버려지고 짓밟혀 바닥을 나뒹구는 추억들도.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멀어져버린 너를 끊임없이 그리워하며 그저 제자리에서 머무는 나 스스로도. 전부 품에 끌어안고 불 속으로 몸을 내던져, 후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그렇게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퍽이나 잘 죽겠다.

 

 

 

 나는 자조하며 얼굴을 감싸 덮었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차라리 너를 나락으로 자빠트렸으면 자빠트렸지, 고작 실연 하나로 죽고 싶다고 난리치는 꼴이 우습거니와, 지금 당장은 무리일지라도 분명 시간이 흐르고 나면 무뎌지고 흐려져 결국에는 잊히고 말 순간임이 분명했다. 고작 감상에 젖은 것 하나만으로 이따위 볼썽사나운 꼴이라니. 저를 아는 이들이 보면 두고두고 곱씹으며 웃어댈 일이었다. 

 

 

 땀에 눅눅히 젖은 손바닥을 옷에 비벼 닦았다. 어느 샌가 불은 거의 사그라져 있었다. 조금만 더 내버려두면 꺼질 것 같았다. 잔가지를 다시 밀어 넣으려다, 불현듯 드는 생각에 입꼬리를 비틀었다. 언젠가 분명 추억만큼은 빛이 바래고 퇴색되는 한이 있더라도 끝내 떠나보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다시 상상을 하자. 산더미 같이 쌓였던 추억들을 하나 둘 불 속으로 던져 넣는 상상을. 나 대신에 미련을 담고, 감정을 담고, 나 자신을 담아, 불 속에서 전부 태워버리자.

 

 

 버리고자 했던. 그러나 버리지 못한 추억들이 하나 둘 머릿속에서 타들어갔다.

 

 

 다만 그것만으로도 북받쳐 오르는 감정에, 결국에는 손에 얼굴을 묻고 숨죽여 흐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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