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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를 쫓아오던 인기척이 사라졌다. 천천히, 하지만 먹잇감을 놓치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쫓아오던 발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뒤를 돌아 어둠 속을 확인한다. 발소리와 함께 뒤따라오던 엷은 은빛도 사라진 채였다. 자신의 숨소리 말고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침묵 속에는 죽음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사냥꾼과 함께 시시각각 덮쳐오는 죽음의 공포는 무음의 어둠 속에서 엷은 베일을 뒤집어써 자신의 존재를 감췄다. 한 손 안에 들어오는 목을 조여 오면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던 사냥꾼은 정말로 사라진 것이었다. 놓아준 건가? 그렇게 생각하기엔 지금까지 쫓아온 시간과 노력이 너무나 아까웠다. 다 잡힌 고기를 놓아줄 만큼 자신의 천적은 마음이 좋지 못했다. 새벽의 한기에 식은 물비린내가 코끝을 스쳤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찰박찰박 물소리가 났다. 목까지 차오른 숨소리가 귀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가쁘게 숨을 내쉬고 들이마실 때마다 쇠를 긁는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자신의 목소리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금은 몇 시지. 눈앞에 드리워진 죽음의 공포에 벗어나고 나서야 냉정을 되찾은 뇌는 그렇게 중얼댔다. 한 줄기 빛 하나 들지 않은 어둠 속에서 이 의문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알면서도. 물론 답은 없었다. 어둠은 시각뿐만 아니라 시간개념까지 앗아가 버렸던 것이다. 젠장. 욕설을 뱉는 목소리 역시 너무 낯설어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았다. 앞도 뒤도 캄캄한 죽음뿐인 이곳에서 가만히 있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고통을 호소하는 다리의 속삭임을 무시하며 몸을 움직였다. 죽음의 냄새로 가득 찬 이곳에서 어서 벗어나야했다. 베일 너머로 손 흔들고 있을 죽음은 그 냄새까지 숨길 수 없었다. 이미 한 쪽 팔은 당해버렸지만 움직이는 것에는 지장이 없었다. 손바닥으로도 채 막지 못한 흔적들은 물에 쓸려 사라질 테니 인지 못할 이정표를 만들어질 염려는 없었다. 다만 이 침묵이 신경 쓰였다. 사냥꾼이 겨우 이 정도로 추적을 멈출 리가 없었다. 하지만 앞뒤를 살펴도 눈을 찌르던 은빛 섬광은 보이지 않았다. 한껏 긴장했던 근육들이 풀어지며 나른하게 눈을 감았다. 한기에 판단력을 잃은 온 몸의 세포가 재잘재잘 갖가지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전혀 모르는 공간에서조차 쉬이 적응하는 인간의 대담함에 놀라워하며 뻑뻑한 눈동자를 눌렀다. 어차피 눈을 떠도 보이지 않는다면 눈을 감는 것이 나았다. 어둠만큼은 눈동자가 적응을 하지 못해 눈을 뜨는 것 자체만으로도 온 몸에 피로감이 퍼졌던 것이다. 느리게 눈을 감았다. 축 늘어진 눈꺼풀 너머, 그 소음 속에서 은빛을 보았다.

 

찾았다.

 

한 번도 듣지 못한 포식자의 목소리는 흥분과 쾌감으로 가득했다. 먹잇감을 물어뜯은 사냥꾼의 얼굴의 윤곽이 느리게 반사적으로 뜨인 눈동자에 새겨졌다. 그 과정은 인두로 상처를 지지는 것처럼 고통스러웠지만 나오는 것은 꺽꺽거리는 짓눌린 울음뿐이었다. 고통을 참지 못하고 흘러나온 핏덩이가 떨어지며 작은 물소리를 냈다. 생리적으로 흐르는 눈물로 시야가 흐려졌지만 눈동자에 새겨진 얼굴은 지워지지 않았다. 고개가 꺾였다. 정수리에 닿은 사냥꾼의 몸뚱이는 한기를 두르고 있었지만 불타는 것처럼 열을 품고 있었다. 흐릿해지는 정신 줄을 붙잡으려는 손은 자꾸 물기로 미끄러졌다. 어둠 속에서 은빛과 함께 보였던 죽음의 베일이 다가왔다. 몸뚱이 위로 얹어진 베일의 싸늘한 온기에 몸을 파르르 떨었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눈동자에 새겨진 사냥꾼의 얼굴은 자신의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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