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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가끔 잠이 오지 않는 밤을 맞게 될 때가 있다. 그것은 불현듯 찾아와서 들어올려져 있는 내 눈꺼풀을 고정시킨다. 그리고 오늘 밤도 그 밤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오랜만에 찾아온 그 밤이다. 가만히 누워서 생각을 한다. 내가 잠에 들지 못하는 것은 이 밤이 아마 샌드맨도 당해낼 수 없는 밤이거나, 샌드맨이 내게 찾아오는 것을 깜빡 잊었거나가 아닐까. 대여섯 살 아이가 할 법한 생각을 하는 나의 행동이 웃기다는 생각이 들어 피식거렸다. 특정한 호흡법, 따뜻한 물 마시기, 요가. 그런 밤이 찾아왔을 때 내가 하는 것들. 오늘도 해야할까 싶어 상체를 슬쩍 일으켰다가 커튼이 쳐진 창을 잠시 멍하니 바라본다.

 

 고개를 두어 번 내젓는다.

 접자, 다시 상체를 뉘인다.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을 한다.

 

 내일은 무얼할까. 갑자기 딸기 파르페가 먹고 싶은 것 같기도 하고. 파스타도 먹고 싶다. 늦잠 자면 안 될텐데. 추위가 가라앉아가네, 봄이 왔으면 좋겠다. 알람은 제대로 맞췄겠지?

 

 생각들을 머릿속에서 두서없이 뱉고나면, 다시 머릿속은 조용해진다. 그 때 즈음, 당신이 조용한 머릿속을 파고든다. 정적으로 채워졌던 머릿속이 벚꽃잎으로 가득 채워지는 이상하면서도 나쁘지는 않은 느낌. 그 때 즈음 떠오르는 생각. 당신과 만날 때는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머릿속에 어린왕자 속 여우가 한 말이 툭 튀어나온다. 나도 어린왕자의 여우처럼 당신이 내게 오기 한 시간 전부터 행복해질거야. 당신과 만나는 생각 만으로도 얼굴에 꽃이 피는 듯하고, 괜히 마음이 간지럽다.

 

 예쁘게 꾸민-그러나 내 스스로에게는 어색하게 느껴지는-나의 모습을 보고 예쁘다는 한 마디라도 해주면 예쁜 꽃봉오리가 개화하는 것처럼 내 마음도 활짝 아름답게 피어버릴 거야. 정말, 말 그대로 사랑스러운 나날이 될 것이다. 비가 내리든, 날씨가 변덕을 부리든. 그냥 기분이 좋을테니. 소설 속의 사랑에 빠진 여자처럼, 다른 일에는 집중을 못하게 되는 나를 상상해보았다. 실없는 생각이라는 생각이 곧바로 꼬리를 물었지만, 아마 당신이라면 나를 그렇게 만들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당신이 내게 입 맞추어주면, 마음 속 무언가가 크게 터지는 느낌이겠지. 콜라와 멘토스가 만나서 폭발하는 것처럼, 흔들어진 탄산음료의 뚜껑을 따면 요란스럽게 폭발해버리는 것처럼. 그렇게 되면 그 날 밤은 완전히 잠에 들지 못할지도 몰라. 오늘 밤처럼 이유없이 불현듯 나를 찾아와 늦은 시간에 잠에 들게 만드는 것이랑은 완전히 다른, 그 때부터 하루종일 쿵쾅거리는 마음탓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만드는 그런 것.

 

 머릿속이 온통 분홍색으로 물들었다. 사랑스러운 생각, 행복한 생각, 사랑에 빠진 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올라가버린 입꼬리와 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드는 간지러운 생각에 괜시리 몸을 뒤척여본다. 달콤한 디저트를 맛본 기분. 혀 끝에서 단 맛이 느껴지는 착각이 들 때 즈음에 나는 깨닫는다.

 

 아, 오늘 잠에 빠지기는 글렀구나.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또 다른 깨달음.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나의 무의식 속에서 정말 큰 부분을 차지하거나, 혹은 나의 무의식 그 자체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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